사람&사랑/참좋은이웃

커피색 바지

truehjh 2015. 6. 11. 20:57

 

내 친구가 좋아하는 커피는 원두커피다. 이 원두는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내준 것이라는 설명을 자세하게 덧붙이며, 그녀는 원두를 적당하게 갈아서 깔대기에 넣고, 그 위로 끓인 물을 조심스럽게 붓는다. 커피향이 진하게 묻어나오면 가만히 커피향을 음미하면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커피를 내린 후에 둘러앉은 친구들의 잔에 커피를 붓고,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진하게 또는 흐리게 조합해서 나누어 주기를 즐긴다. 이런 모습이 오래전부터 그녀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커피타임이다.

 

하지만 나는 고급스런 그녀의 홈메이드 커피를 즐겨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2 : 2 : 1의 비율로 탄 이른바 다방커피다. 요즘은 거의 믹스상태로 대중화되어 있는, 프림 맛이 진해 고소하고 달콤한 봉지커피의 맛을 좋아한다고나 할까. 순수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커피맛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커피가 좋고 그런 커피가 커피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10년쯤 전 어느날, 그녀를 통해 바지를 주문하게 되었다. 바지를 만들어 주시는 분은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분이고, 이미 나의 싸이즈를 알고 있는 분이고, 내가 늘 면류의 소재를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 분이라서 색상만 알려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커피색이라고 말했고... 내 친구는 옷을 만드는 분에게 커피색이라고 말했고... 옷을 만드는 분은 커피색 천을 구입해서 바지를 만들었다.

 

얼마가 지나 바지가 집으로 도착했다. 받고 보니 내가 생각한 커피색의 바지가 아니었다. 내가 말하는 커피색은 프림과 커피가루를 섞은 색이었고, 내 친구가 말하는 커피색은 뜨거운 물로 원두를 내린 부드러운 색이었고, 바지를 만드는 분이 생각하는 커피색은 진한 원두커피 가루의 색이었다. 다 같이 커피색을 말했는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커피색의 기준이 달랐던 것이다. 단 하나의 단어에서도 서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의 차이에 따라 수많은 의미가 파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커피색이라는 단어를 통해 느꼈다.

 

사소한 일상의 생활에서도 서로의 기준이 이렇게 달라 일치하기 어려운데,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각자가 어울려 함께 소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공동의 가치를 세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