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Basecamp/Phrase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 7 :7)

truehjh 2015. 6. 20. 22:28

  

가뭄과 전염병으로 세상이 뒤숭숭하니 사람들은 저마다 분석하고 비평한다. 나 또한 온라인의 sns 속에 빠져있는 순간에는 타인의 의견이 내 의견 같고 내 의견이 타인의 의견 같아 공감하며 흥분한다. 그것만으로도 거대한 사회관계망 안에서 무언가 내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안심하곤 하지만 사실 현실로 나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 화분 속의 식물처럼 주변에 있는 어떤 존재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메르스... 처음엔 몰라서 경계했고, 매주마다 막바지라는 뉴스가 계속 꼬리를 물 때는 막강한 전파력이 두려워서 경계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체를 파악했으니 주의를 기울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경계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전염병 메르스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었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공포 때문에 컴퓨터 끄면 핸폰으로 눈이 가고, 핸폰을 내려놓으면 TV 리모콘이 먼저 보인다. 현란한 언어의 유희로 인해 모든 정보들이 금새 식상해지지만 난 크고 작은 모니터로의 이동을 쉽게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젠 모니터에서 종이로 나의 시선을 이동시킬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작은 결단이 어렵다. 종이 위에는 모니터 위 보다 더 많은 정보와 꿈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행동 하나 바꾸지 못하면서 멀게는 미래, 가깝게는 내일 또는 이 순간 이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어떻게 해야 삶의 내용을 바꿀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물리적인 변화를 시도해 보려는 의지는 미미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순간 순간 박차고 일어서는 힘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근본을 알 수 없는 삶의 욕구는 있는데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욕구하는 것 더 나아가서 욕망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나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욕망은 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힘이어야 하는데 나의 실존은 구체적인 욕구를 가지지 못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다. 가뭄보다 더 메마른 상태로 살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는 신종바이러스 메르스보다 강력한 전염력을 가진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실천력의 의지는 간절한 간구와 기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가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 마태복음 7 : 7 ~14 -

 

‘구하라(ask)’로 시작되는 이 말씀이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내 맘을 울린다. 자신의 백성을 엘림으로 인도하셔도 되는데 마라를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 시험을 통해 부르짖게 하시고, 기도하게 만드시는 하나님! 기도는 흥정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소통이다. 약속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고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사환에게 7번이나 징후를 확인하러 갔다 오게 하는 엘리야처럼 약속의 말씀이 나의 삶의 자리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

 

나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소망을 갖게 되고, 기쁨을 누리게 되고, 위로 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의 이웃이 나로 인해,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소망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내가 받은 감동이 넘쳐서 이웃에게로, 내가 꿈꾼 소망이 넘쳐서 이웃에게로, 내가 받은 위로가 넘쳐서 이웃에게로, 그리하여 이웃이 나로 인해 삶의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의 어떤 의미있는 삶과도 비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구하라(ask)’의 말씀에 순종하자. 역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삶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