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한지붕아래서

산소 가는 길

truehjh 2016. 5. 10. 19:59

2016.05.10


어버이 날 대신 5월 10일에 엄마와 아버지가 계시는 해방교회 공원묘지에 가보기로 막내와 약속했었다.


엊그제까지는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 따라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하늘도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가볍게 옷을 입고 나섰을 동생이 걱정이 되어서 동생에게 줄 두꺼운 옷부터 챙겼다.  산으로 올라갈 때 사용할 지팡이도 챙겼다. 엄마가 쓰시던 지팡이다. 작은올케와 정열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고는 막내를 태우러 운정역으로 갔다. 점심은 내가 쏘겠다고 하고, 비가 오는 날 어울리는 만둣국을 먹으러 갔다. 이유를 굳이 만들자면... 지난달에 첫 번째 연금을 받은 기념으로... 그냥 그런 소박한 이유를 가지고 형제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그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빗방울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나는 용감하게  빗길을 운전해서 가기로 마음먹고 공원묘지를 향해 갔다. 네비가 알려줘도 공원묘지로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헷갈린다. 오늘도 역시 그랬다. 입구를 못찾아 공장으로 들어갔다가 스톱막대에 부딛혀 앞유리에 금이 가고... 서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냥 들어갔다고... 수위에게 야단도 맞고... 사실은 당황해서 아무 소리도 못들었다. 그리고도 엄마아버지가 쉬고 계신 곳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길을 찾아 올라갔다. 묘지 아래 넓은 공간에 차를 세워놓고 한숨을 돌린 후에 차에서 내렸다.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 추웠다. 두터운 옷을 덧입고, 우산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막내는 집에서 준비해온 카네이션 꽃화분 세 개를 가지고 올라갔다.

 

엄마아버지의 묘지로 가는 길은 완전 오르막 비탈길이다. 더욱이 비에 젖어 미끄럼틀 같았다. 엄마가 쓰시던 지팡이와 막내의 팔 하나를 의지해 조심 조심 올라갔다. 어깨 아픈 막내에게 완전 기댈 수 없어서 더더욱 조심했다. 처음 시작길은 그런대로 오를만 했다. 풀이 나지 않은 부분은 잔디를 심어놓은 상태여서 그 잔디를 밟고 올라가다가 2/3 지점에서 난코스를 만났다. 그곳에서 미끄러져 완전히 엉덩방아를 쪘다. 진흙이 양손바닥에는 물론 외투와 바지에 다 묻어 바지가 무거워질 정도였다. 나에게는 부모님께 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힘겨운지... 참 어렵다.

 

그래도 마침내는 올라갔다. 비가 오는 탓에 좋은 점 한 가지가 있었다. 숟가락으로도 땅이 잘 파져서 카네이션 화분을 쉽게 심어 놓을 수 있었다. 막내는 준비성이 훌륭하다. 카네이션뿐 아니라 목장갑과 땅을 팔 수 있는 숟가락까지 준비해 가지고 왔다. 엄마아버지 앞에 다 심으려다가, 청년때 돌아가신 용서삼촌의 묘가 안쓰럽게 보여 그곳에도 카네이션을 심자고 했다. 이건 아마도 내 처지를 반영한 생각일 것이다. 나도 자손이 없으니까 동변상련이라고나 할까.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세개의 화분을 준비해온 동생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부모님 아래, 큰누나 옆에 누워있는 삼촌이 그래도 내 처지보다는 나은 것 같다.




작업을 마치고... 막내랑 둘이 우산을 쓰고... 찬송을 불렀다. 주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내려오는 길 역시 더욱 미끄러웠지만 올라갈 때의 실수를 거울삼아 풀을 밟고... 천천히... 조심조심 내려왔다. 카네이션이 남아 있는 묘지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이제 카네이션 달아드릴 어버이가 안 계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나에게 꽃을 달아 줄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 또 서글프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영태리 정열네 회사로 갔다. 흙 묻은 운동화도 물로 씻고, 텃밭의 채소들도 둘러보고, 사무실에 들러 따근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입구에 피어있는 목단꽃 사진도 찍고... 그리고 다시 운정역에 막내를 데려다 주었다. 헤어지는 시간은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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