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행운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협력하고, 서로 베풀고, 서로 배려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생각이라고 의심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긴 하다. 그래서 막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예전에는 가족이나 마을공동체가 그러한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힘이 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우선시하는 지금의 사회구조에서는 대가족 공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핵가족 혹은 1인 가족 시대로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나 위치도 급격한 속도로 바뀌고 있는 와중에 나는 동생가족과 함께 사는 행운을 누리며 살고 있다.
아들, 며느리, 손녀,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딸과 함께 사는 행운을 누리며 사셨던 엄마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엄마는 큰아들 집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면서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의 초청에 의해 작은 아들집에서 살기로 결정하셨을 때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며느리뿐만 아니라 나이 든 딸과 함께 한 집에서 삶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셨다. 지혜로운 엄마는 결혼 안 한 딸인 나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조정하셨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어하셨다. 그러나 갈등 없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조정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알아채셨다. 엄마는 성경을 읽으시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 나가셨다. 워낙 자존감이 강하시고, 예절 바르시고, 타인의 삶에 관심이 별로 없으신 분이라서 가능하기도 했지만 성경말씀이 엄마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엄마는 신앙의 힘으로 자녀들을 바라볼 수 있으셨고, 인간은 누구나 각기 개인의 형태로 하나님을 만나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셨을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할 도리를 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돌보셨으니 말이다. 자신이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진심으로 하시면서 그렇게 하나님께 갈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 같다. 늘 성경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심심하시면 옷을 고치거나 바느질을 하면서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셨다. 삶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것은 인간이 말년의 시간을 의미 있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엄청 세련되고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작은아들집에 사시면서 큰아들 내외와 시집간 딸 내외의 사랑을 받으며 사셨다. 누구나가 노년을 그렇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누린 복 중의 복이다. 돌아가신 후에도 작은 며느리에게서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계신 것을 보면 증명이 된다.
그럼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는 남동생의 누나이며 올케의 시누이다. 그러니까 시어머니인 나의 엄마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우리 시대 연령층의 사람들에게는 큰아들이든 작은아들이든 아들이 엄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직은 사회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결혼 안 한 누나와 같이 사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함께 사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 구조를 가진 사회 속에서 내가 손위의 오빠도 아닌 남동생 식구들의 보호를 받으며 오랜 기간 동안 불완전한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고 보기 드믄 일이기도 하다. 남동생 집에서 나는 굉장히 수동적인 모습으로 지내고 있지만, 결혼 안 한 나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동생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행운이다. 그러나 동생가족에게도 그것이 행운이라고는 단언하기 어렵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까지 동생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외롭지 않게 살았다. 그것으로 족하다. 지금까지 함께 사는 복을 누렸으니 당연히 독립을 해야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3년 안에 독립해야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요즘은 혼자 사는 삶을 준비하고 있다. 함께 사는 삶의 축복 속에서 독립이라는 또 다른 축복 속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분가를 택하려고 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 사는,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충분하게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사는 복을 누렸으니 이제라도 씩씩하게 싱글라이프를 준비하여 즐기며 살아보자. 독립적인 시니어시대를 열기 위한 첫 번째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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