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참좋은이웃

에피소드

truehjh 2016. 9. 9. 09:56

  

아들을 군대 보내고 뭔가 배우며 시간을 보내려고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간 그녀... 자격증을 모두 획득하고 취업까지 하면 조기졸업이 가능하다는 말에 힘입어 열심히 공부했다. 어렵다는 웹사이트 관련 자격증을 다 따고서 취업확인증만 있으면 폼나게 조기졸업을 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친구인 나에게 취업확인서 한 장 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을 당했단다. 오래 전 이야기를 이번에 들었다.

 

나는 그 당시 출판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그 부탁은 경제적으로나 법적으로 손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거절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친구지간에 그 정도의 부탁도 못 들어주는 친구를 버리기 위해서 전화번호를 바꿨단다. 친구 목록에서 삭제시킨 것이 아니고 아예 자신의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고 한다. 사실 나는 기억도 못하는 일이었다. 물론 나도 전화를 수시로 하는 체질이 아니라서 그녀가 전화번호를 바꿨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몇 년이 흘렀다.

 

그 이후였나 보다. 어느 날 오랜만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약속을 잡고 만날 장소에 나갔다. 그녀는 여전히 상냥한 미소로 자상하게 자기가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했다. 전화번호를 바꿨던 속내는 제외하고 말이다. 우리는 울고 웃으며 지나온 삶을 나누고는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소식을 주고받곤 하는 사이가 되었다. 장애운동도 함께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 들어 인생의 길동무로서 잘 지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지방으로 이사를 했고, 아무도 들이지 않는 자신의 집에 처음으로 나와 나의 친구를 들였다. 친구의 방문을 허락한 것은 자신의 행동근거에 예외적인 부분이었단다. 그러고는 아예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그녀의 삶은 늘 여행자의 삶 같았다.

 

그녀는 참 지혜로운 여인이다. 경우가 바르고 현실적인 계산능력이 뛰어나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다 겼으며 살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이해심이 아주 많다. 비현실적인 면이 많은 나는 그녀에게서 현실적인 삶의 지혜를 배운다. 아들은 결혼을 해서 먼 외국에 살림을 차렸고, 그녀는 제주도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있던 터에 나는 친구와 함께 열흘 정도 머물면서 제주도의 곳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역시 우리는 그 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제주도 집에 처음 방문하는 방문객이 되었다. 그녀는 최대한의 성의로 우리를 반기고 함께 여행하고 먹으면서 시간을 즐겼다.

 

지난 봄에 그녀는 터키로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 좁은 식당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터키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을 했다. 그리고 재활치료를 하며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녀가 서울에 입원해 있을 때는 자주 들려보려고 노력했는데... 제주로 병원을 옮기니 병문안 가기가 힘들어졌다. 또한 나의 스케줄도 만만치 않아 쉽사리 제주도 병문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열흘쯤 전에, 나의 여름 행사 마지막 미션으로 제주도로 병문안을 갔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머물면서 밥 먹고... 이야기하고... 쉬고... 자고... 하면서 지냈다. 마지막 날 처음 밖으로 나와 고기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들은 이야기가 바로 전화번호를 바꾸는 그녀의 습관에 대한 에피소드였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나 때문에 전화번호를 바꾼 일이었다. 그녀는 대인관계에서 힘들어지면 때때로 전화번호를 바꾼단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숨기는 방법이 그 방법이란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내가 그런 부탁을 받으면 그 당시처럼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못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고, 그녀도 이제는 그런 나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으면서 상황을 종료시켰다. 타인이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 사람들이 추측하고 상상하는 나는 나 일 수도 있고 내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기대하는 나를 본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내가 기대하는 시각으로 이웃을 보고 있으며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하므로 사람 간에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지 진정한 자아를 인식할 수 있을 때만이 서로의 모습으로 대면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그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본다. 나는 정말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친구인 나를 거짓말 하게 만들뿐 아니라 사장까지도 거짓말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 아닌가.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걸리는 문제들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고, 또 그것을 행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와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간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나의 말과 생각에 나는 과연 떳떳할 수 있는가. 나도 타인에게 그런 요구를 하고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처럼... 그것이 나에게 요구되어졌을 때만 방어기전으로 그 원칙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심으로 반성하며 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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