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기다림
작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까지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움트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온갖 풍상과 눈비, 한파와 열기를 견뎌내며 기다려야 한다. 씨앗뿐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기다린다. 또 하나의 생명, 새로운 희망이 움틀 것을 기다리는 기다림이다. 들판에 피어난 이름 없는 꽃, 돌 틈에서 자라나는 작은 풀 같이 연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로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는 생명이 아니라 하더라도, 평범한 것들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는 따뜻한 시선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약자와 상처받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은 기다림을 품고 있다. 그것이 생명력이다.
나에게도 전 생애를 통한 기다림의 기쁨과 고통이 있었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렸고, 내가 도구로 쓰여질 순간을 기다렸다. ‘너희는 잠잠히 있어 내가 하는 일을 볼찌어다’라는 시편의 말씀이 나의 영혼에게 선포되고 있는지 확인하며 기다렸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삶에서도 기다림은 멈추지 않았다. 운명이라는 허구 뒤에 숨어서 숨죽이며 기다렸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이웃과 함께 화목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꿈을 꾸며 기다렸다. 나의 미래가 완성될 수 있는 시간을, 그리고 나의 생이 충족되어지는 시간을 간절히 애타게 기다렸다. 이러한 기다림에는 끝이 없어서 ‘기다림이란 가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폴 틸리히의 말에 큰 위로를 받으며 신실하게 기다렸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 마음에 찾아오지 않은 평화는 초라한 나를 시험하고 단련했다. 그 긴 세월을 연단받으면서 살아왔는데 여전히 삶의 한 귀퉁이에 남아있는 그림자는 기다림이다. 아직도 그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일이 찾아지기를 기다리는 나,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의 삶을 기다리는 나,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나임을 어쩌랴. 이러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지만 기다림이란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젊었을 때 가졌던 기다림은 삶의 성취에 대한 기다림이었다면, 노년의 기다림은 외로움을 이겨낼 막연한 기다림이라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나이 들수록 더 고독해지고 더 외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노년의 외로움이란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의 상실 곧 삶의 애증을 나눌 수 있는 가족관계 또는 인간관계의 상실에서 오는 것 같다.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각자가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돕고 채워주는 삶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어가지를 않는다. 어떻게 해야 나와 비슷한 타자 곧 나의 이웃 속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속으로, 그리고 비슷한 성향과 관심을 가진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 어떤 어울림을 가질 수 있을까. 나에게 남은 생명력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면, 아니 기다림은 이미 가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일까.
과연 어떤 삶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 육십 년을 넘게 살고 있는데 아직도 기다리는 삶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분에 넘치는 소망들과 마음속에 있는 아쉬움들을 모두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여전히 기다림의 그림자가 남아 있으니 난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기다림의 그림자마저 다 사라져 버린 후에야 오롯이 자유로운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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