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장년시대(2008~2019)

e시니어진입기 - 노화와 정신건강

truehjh 2017. 10. 5. 15:27

노화와 정신건강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슬픔 중의 하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아쉬움 중의 하나는 가난과 고독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안타까움 중의 하나는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재빨리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슬프고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서 깊은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려보지만 마음에 감동이 없다. 거기에서 얻어진 엄청난 정보들은 나의 뇌에 저장되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들락거리는 동안에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것일까. 다양한 정보들을 눈으로 읽고는 있지만 뇌로 가고 마음으로 가는 경로가 차단된 듯 아무런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억력이나 시력의 저하보다 무감동증이 더 큰 문제로 나에게 다가온다.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감퇴된 상황을 무감동증, 혹은 무쾌감증이라고 한다. 무기력증으로 이어지는 무감동증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옳다는 무의식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는데서 비롯되며, 긍정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저 성격적 원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자긍심이 강한 사람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노인의 무감동증(apathy)은 뇌의 수축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우울하지 않아도 세상 모든 일에 흥미나 관심이 없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뇌의 크기가 작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단다. 이런 종류의 글을 대하면 겁이 덜컹 나서 내 상황을 살펴보곤 한다.

 

무감동증을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무감동증 즉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증상은 약도 없는 것 같다. 슬프고, 화나고, 신나고, 만족스럽고, 배우고 싶고, 뭐 그래야 하는데 그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 않으니 사는 맛이 전혀 없다. 내가 누군가를 감동시키려는 마음가짐도 없다. 이웃에게도 눈이 돌려지지 않는다. 예절 바르고 친절하게 행동하고 싶다는 열망도 없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노력마저도 하지 않는다. 이 무능력과 나태함을 어이하나. ‘감동하지 않는 상태가 늙음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렇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구나, 아니 이미 늙었구나. 감동되지 않는 마음으로 인해 이처럼 난감해 본 적이 없다. 이젠 정말 노인인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몸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시도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몸을 움직일 기회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그저 편하게 지내려고만 한다. 새로움을 재생산할 능력이 없는 것이든지, 아예 포기한 것이든지 둘 중 하나다. 아니 둘 다 일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관심이 없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나와 전혀 다른 삶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다. 간섭하기도 싫고,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싫다. 다 그저 그런 삶이려니 하는 마음이다. 성공담을 말하는 타인의 이야기에 감동도 없어졌다. 그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여러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거리 같을 뿐이다. 어쩌면 모두가 비슷한, 희망이 없는, 별 변화가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기에 기대가 아주 없어져버렸나 보다. 그냥 편한 것이 좋고, 힘들게 맞추고 싶지도 않고, 노력하기도 싫고, 그럴 여력도 없다.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 보니 간절히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안 될 것은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옳다고 믿었던 신념들이 그 빛을 발하기 전에 퇴색되거나, 너무도 시간이 오래 걸려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무도 기댈 수 없고, 아무런 기대가 없는 삶, 기대지도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 삶, 진정으로 외로운 삶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 약속되어야만 오늘 이 시간이 의미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고, 이겨내는 그런 형태의 삶에만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고통과 함께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형태와 그 시간들의 소중함이 의미 있을 수도 있다. 근육운동을 해서 근력을 키우듯이 마음에 탄력을 주는 훈련을 시도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