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살아계셨지... 엄마가 내 곁에 우리 곁에 계셨지... 저 때는! 그런데... 지금은?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문득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도 시선이 창밖으로 무심코 옮겨지면 머리 속의 생각들은 다시 다른 생각에 머물게 된다. 햇빛은 화창하게 빛나고 나뭇잎들은 찰랑거리며 그 빛을 반사하고 있다. 생각은 다시 멀리 도망가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머리 속을 채운다. 아니 가끔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아름다운 소리다. 평상시에는 왜 저 소리를 놓치고 살까.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들리는 소리도 없는 가 보다. 그저 나에 대하여 무념무상으로 존재할 때만이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버리는 연습을 마치고 이제 단순하고 가벼운 삶의 길을 걷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면 아직 잘 모르겠다가 답이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 안온하고 안락한 삶을 허락해 주시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갚을 길이 없음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왜? 나를 사랑하셔서! 갚을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 같아 조바심치다가도... 아... 몰라... 그냥 지금이 감사할 뿐이야! 이렇게 포기하고 더 이상 생각하려 하지 않고 있다. 육체의 고통에 힘겨워하다가도 더 이상의 안온한 삶을 바라는 것이 무례한 것 같아서 요구하지 못한다.
새로움을 재생산할 여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아예 포기한 것일까. 관심조차 없어진 건가. 전혀 다른 삶에 대하여 궁금하지도 않고, 타인의 간섭하기도 싫고, 어울리려고 노력하기조차 힘겹다고나 할까. 어찌되었건 관심이 없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다 그저 그런 삶이려니 하는 마음이다. 궁금증이 없어지고 감동이 줄어든 타인의 이야기, 어쩌면 모두가 비슷한, 희망이 없는, 별 변화가 없을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기에 기대가 아주 없어져버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편한 것이 좋고, 힘들게 맞추고 싶지도 않고,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노력하기도 싫고 여력도 없다. 지금 당장 죽는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지만 앞으로 10년은 정신 차리고 살아야하는데 벌써부터 이리 맹꽁하게 시간을 소모하는 패턴에 익숙해진 것을 보면 희망이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별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거주지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같이 사는 가족의 공동생활에서 나에게 가장 마음에 충족되는 일은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티비를 보는 것도 아니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나갈 때 들어올 때 방문을 열어보고 인사하는 행위가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다. 퇴근하고 들어온 동생이 문을 살짝 열고 말없이 얼굴 한번 슬쩍 쳐다보고 지나간다든지, 도토리가 늦은 시간 도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들어와서 불 꺼진 내 방문을 열어보고 인사의 말을 건네는 행동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기쁨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행복을 즐기자고 동생의 가족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 같이 늙어가는 차에 동생에게 누를 끼치지는 말자. 동생도 노화되고 있는 자신이 서글플 것이다.
이제 앞으로 두 단계의 삶이 남아 있다.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기 전 단계의 삶과 요양병원에서의 삶! 결국은 전 단계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내야 하는 일이 관건이다. 최대한 간소화하고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간소화한다고 즐거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죽을 때를 의식하고 죽음의 자리를 찾아 홀로 길을 나선다는 코끼리의 생활습성이 부럽다. 나는 이제 약속했던 독립을 실천하면서... 단순하고 가벼운 삶을 향해 조금씩조금씩 다가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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