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2015~ )

e시니어진입기(34)- 엉뚱하지만 절박한 기도

truehjh 2017. 12. 18. 18:30

엉뚱하지만 절박한 기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나현실의 나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나면서 생기는 현상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서다. 특히 어딘가가 심히 아프다고 느껴질 때에 건강한 나노화된 나와의 괴리감이 아주 크게 느껴진다. 물론 건강과 노화가 대비되는 개념의 단어는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강은 육신의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노화는 고통을 동반한 노쇠의 상태를 의미한다. 노화로 인해 참기 어려운 통증이 나타나면 그 고통이 오랜 시간 지속될까 봐 겁이 덜컹 나면서, 마음에는 걱정이 가득 채워진다. 무익한 걱정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전에는 어떤 걱정과 불안이 내 온 맘을 차지하고 있었을까. 손에 잡히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미래의 나에 대한 수많은 걱정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던 그 자리에, 이제는 육신의 고통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육신의 고통과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워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있다. 육신의 연약함은 극복할 수 없는 조건이어서 이렇게 다잡고 또 다잡는 시간들을 가져도 고통에 대한 불안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할 터인데 그게 잘 안 된다. 인간의 나약함이란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난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집착마저 다 떨쳐내고 난 후에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순간이 오기는 할까?

 

진통제로 고통을 경감시키면 통증의 억압에서 벗어나 사고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통 없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은 절박하다. 나이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나 역시 오랫동안 침상에 누워 병고와 싸우면서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 치매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뇌혈관 문제로 오랜 기간 고생하며 힘겹게 삶을 유지하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심장혈관의 문제로 갑자기 생명을 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가장 깔끔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가끔은 그런 죽음의 순간을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너무 엉뚱한 기도인 것 같아 혼자 피식 웃곤 한다. 기도를 듣고 계시는 분께서도 웃으실까.

 

기도한다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예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는데 나는 전혀 다른 기도를 했다. 어린아이처럼 늘상 질문하고 요청하는 기도다. ‘왜 이런 일이 생겼나요로 시작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할까요, 도와주세요에서 멈추는 기도였다. 좀 더 나가자면 이렇게 해 주세요가 고작이었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기도는 별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생각날 때마다 고통 없이 죽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엉뚱한 것 같지만 진실할 뿐 아니라 절박한 기도다. 고통 중에 오래 머물다가 가고 싶지 않다.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에 있을까. 간단해야 할 내용을 접근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어 놓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법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평화롭고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보다 더 간절한 소망은 없을 것 같다. 하긴 지금 이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원망은 없다. 사실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더 새로운 것들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지금 할 일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계속 이 상태로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한다면 그 시간들이 너무 무료해서 견디기 힘들 것 같아 오히려 두렵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꿈결에 저를 찾아오셔서, 그때 제 마지막 호흡을 거두십시오. 주님, 꿈결에서 저를 만나주시고, 그 순간 저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아시죠?’ 엉뚱하지만 절박한 나의 기도다. 그리고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의 소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