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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절망하여 살아왔는가, 어떤가? / 키에르케고르

truehjh 2019. 2. 21. 10:48

 

아아, 사람들은 인간적인 고뇌와 인간적인 비참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말하고 있는가. 나도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그 가운데서 많은 것을 더 가까이에서 배워 알았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가에 관하여 자주 말한다. 그러나 오직 다음과 같은 사람들만이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 , 인생의 즐거움과 근심 때문에 마음이 끌려서, 영원한 결단 밑에서 자기 자신을 정신, 즉 자아[자기]로서 의식함에 도달함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 (결국은 마찬가지이나) 하나님이 거기에 존재하고 그리고 ’(그 자신, 그의 자아[자기])가 이 하나님 앞에 현존해 있음을 한 번도 깨닫지 못하며, 가장 깊은 의미에서 그에 대한 감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러한 수확(무한성이 수확되는 일!)에는 절망을 통함이 없이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아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든 사상 가운데 가장 축복된 이 생각에는 눈이 가리워져서 이렇게 헛되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비참. 인간이 가능한 모든 일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축복에 만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는 이 비참. 인간이 기계와 같이 사용될 수 있는 때문에 각 개체가 최고의 것을 얻기 위하여 각 인생은 이것을 위하여 사는 보람을 얻고, 그 안에서 살기에는 영원도 지나치게 길지는 않다 군중이 각 개체 속에서 분단되는 대신에 오히려 개체들이 군중 안에 집단화 해버리는 이 비참. 이러한 비참이 현존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는 영원히 울어도 다 울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절망이 이렇게 숨겨져 있다고 하는 사실이, 내 생각에 의하면, 가장 두려워할 만한 병인 동시에 고뇌인 절망이 더 두렵고 떨리는 것이 되는 새로운 이유인 것이다. 그것은 단지 절망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의 절망을 숨겨둘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아니, 보다 절망이 그 자신도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속 깊이 숨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오, 그리고 언젠가 모래시계가, 인생의 모래시계가 다 흘러 가버리는 때가 온다면, 이 세상적인 헌화(暄嘩)가 고요해지고, 노동의 분주함 또는 분주한 활동에 따르는 소일(消日)이 끝을 고하며, 너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마치 그것이 영원 안에 있는 것 같이 고요해 지는 때가 온다면, 네가 남자였거나 여자였거나, 부자였거나 가난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왔거나 독립했었거나, 행복했거나 불행했거나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네가 고귀한 데 머물러 왕관의 광채를 띄고 있었거나 또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천한 인간으로 그날그날의 무거운 짐과 울분을 짊어져 왔었거나 간에, 혹은 너의 명성이 세계가 존속하는 때 까지 오래 인간들의 기억에 머물러 있던가, 또는 아무 이름도 없이 수도 헤아릴 수 없는 군중 속에 같이 몰려다니던 한 사람에 지나지 못했던가, 또는 그 이상 없이 가혹한 불명예스러운 인간의 판단에 의하여 죄인의 낙인이 찍혀 있었던 간에 그러한 것들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영원이 너에게 묻는 것, 그리고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백만의 사람들의 하나하나에게 묻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다. 너는 절망하여 살아왔는가, 어떤가? 또는 너 자신의 절망에 관하여 깨닫지 못할 정도의 상태에서 절망해 있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 병이 너를 물어 상하게 하는 비밀로 네 마음 깊이에 숨겨 간직하고 살아왔는가, 혹은 스스로의 절망 안에서 광폭해져서 타인에게 두려움이 되어 오지나 않았는가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있었다면, 즉 네가 절망한 대로 살아왔다면, 다른 점에서 무엇을 얻거나 상실했거나 간에, 너에게는 모든 것이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영원은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원은 절대로 너를 모른다고 말한다! 오히려 더 두려운 것은, 영원은 너를 알고 있다. 네가 알려지고 있는 대로 너를 알고 있다. 영원은 너의 자아[자기]를 통하여 너를 절망 속에 깊이 붙들어 맨다.”


- [죽음에 이르는 병 / 키에르케고르(김형석 교수 역), 경지문고(7) pp.39-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