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시니어시대(2015~2024)

e시니어진입기 - 촛불집회

truehjh 2016. 12. 19. 11:36

촛불집회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었다. ‘2016 민중총궐기대회로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정도가 참여했단다. 나도 그날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마음이 몹시 불편한 상태로 TV 앞에 앉아 있었다. 촛불집회에 관한 보도를 시청하는 중에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증상이 느껴졌다. 맥박을 세어보니 100회가 훨씬 넘어갔다. 맥박은 심장박동에 따라 동맥으로 피가 밀려 나올 때 혈관에 전해지는 압력의 진동을 말하며 보통은 심장박동 수와 맥박수는 일치한다. 휴식 시에 성인의 평균 맥박은 약 72/분이다. 성인의 경우 맥박 수(Rate) 60~100/분은 정상범위에 속하는데 난 살짝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우선 TV를 끄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평상시에도 나는 72라는 숫자보다는 다소 높은 맥박수를 가지고 살았다. 그러므로 나의 심장은 다른 이의 심장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심장에 부담을 주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오후의 날씨는 아주 흐리고 눈바람이 휘몰아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우중충하게 추운 날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혹은 춥다는 이유로 집회 참석률이 급격히 낮아질 것을 걱정하다 보니 맥박수가 제멋대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그 이후 얼마간 빈맥이 지속되더니 요즘은 부정맥이 더 심해졌다. 하나, , , ...,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 열하나, 이렇게 맥박을 세다 보면 가슴이 또 두근두근 거린다. 역시 스트레스가 커다란 요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화면을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분노로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었다. 바로 눈앞에서 세월호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아무도 구해내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였다. 돈보다 조직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그 당시 국민적 재난에 대비하는 정치적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쿵쾅거린다. 하여간에 지금 내가 맥박 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정치는 내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대학생일 때도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은 혼란에 혼란이 거듭되는 상황이었다. 70년대 초반의 대학가는 언제나 데모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광장이었으며 거리였다. 많은 대학생들이 독재정권에 맞서서 극렬하게 저항하는 시절에 약대생들은 비교적 시위에 참여하는 비율이 낮았다. 실습과 실험이 밀려있고, 약사면허시험에 통과해야 하는 절실함 등등의 이유로 유혈사태를 거치면서도 직접 거리로 나가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었다. 물론 시위에 앞장서다가 감옥으로 끌려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몫이었지 나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 같은 보행장애인이 군중 속에 휩쓸리게 되면 자타가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노심초사 덕분에 데모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야학에 나가서 수학을 가르쳤고, 해방신학 서적에 몰두하면서도 직접 행동하고 참여하는 데는 거리가 있었다. 그 이후에도 현실의 정치상황은 암담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처해있는 가까운 주변에서 가난한 이들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돌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장애인권운동에 참여하였지만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세월호가 내 두 눈앞에서 가라앉고 있는 그 순간 바로 전까지 나는 그렇게 살았다.

 

2년 전 봄 어느 날 TV 화면에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던 심정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왜 구하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참담한 심정은 지금도 표현할 길이 없다. 원인 규명은 나중에 하더라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람을 구하는 일을 시도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면 그처럼 참담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그 이후 여러 가지로 원인 규명과 사후 대책이 세워졌다고 해도 너무 미비했고 타당치 않았다. 그래서 올바른 대책이 나오려면 정치가 바로서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에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횟수가 많아졌다. 모든 대중매체를 대할 때마다 새까맣게 속고 사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동시에 TV에 소개되는 잡다한 정치상황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다음 말이 궁금하고, 다음 날이 궁금하고, 다음 상황의 변화가 궁금했다. 뉴스가 그렇게 흥미진진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특히 20대 총선을 준비하는 각 정당의 공천과정은 일일극보다 더 자극적이고, 주말드라마보다 더 막장이고, 조작된 다큐멘터리 프로보다 더 인위적이었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자신들이 저지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이든, 구조적이든, 정치적이든 ‘~ 안 했다, ~ 기억 안 난다, ~ 모른다, ~ 절대 아니다.’라며 빤질한 얼굴을 들고 버젓이 우긴다. 인간에게, 우리에게, 양심이란 것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가.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정치현실은 변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현실이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변화를 위한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기막힌 국정농단 앞에서 이것도 나라냐라며 촛불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 광장에는 촛불을 들고 곳곳에서 모여드는 군중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라고 플라톤이 말했단다. 결국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