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코로나19 팬데믹

코로나19 - 2차 대유행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truehjh 2020. 8. 19. 17:06

교회발, 카페발, 광화문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사례들이 발생하여 재유행으로 이어지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와 있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으로 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고 한다. 1차 대유행은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폭증하던 시기를 말하고, 이번에 광복절을 전후한 전광훈발 확진자가 대거로 발생하면서 다시 대유행을 몰아 오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가, 목사가, 교인이 방역대책을 위반하면서 이웃을 엄청난 혼란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교회뿐 아니다. 내 생활 활동범주 안에 있는 운정지역에는 스타벅스발 확진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점점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긴장을 푼 결과인 것 같아 안타깝다.

 

6개월 만에 재활 수영장이 문을 열어서 8월에 등록했는데 다시 휴관이다. 이제 겨우 세 번 나가 수중운동을 시작했을 뿐인데 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교회 역시 지난주부터 다시 영상예배를 드리고 있다. 가끔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커피점에 들려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도 또다시 절제해야 한다. 식구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것도, 친구들을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수다를 떠는 것도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나누어 먹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방역을 위해 금지되고 있으니 삶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자연으로 나가도 사람과 함께가 아니고 홀로 자연을 마주해야만 하니 집에서 티비나 컴퓨터나 핸드폰에만 매달려 살아야 하는가 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사람이 서로 가깝게 지낸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3밀(밀접, 밀집, 밀폐)을 피하라는데 이것이 과연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가까운 사람에게 전염될 수밖에 없는 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이 우리네 일상의 인간관계 형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 것인가. 전혀 새로운 삶의 형태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특히 신앙생활의 형태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만 하는 시기를 맞고 있는 것 같아 갈피를 잡기 힘들다. 태중에 있을 때부터 다니던 현장예배에 참석할 수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대중의 합창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언제나 맘 편히 모여서 이전처럼 자유롭게 함께 찬송을 부르며 예배드릴 수 있을까. 여러 가지 혼란에 처해 있는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 나는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어서 번민에 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일까. 신실한 예수쟁이로서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기본 틀인데 어떻게 변화되는 것일까. 아니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그리스도인들도 너나없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교회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교계는 정부의 방역 조치를 종교 탄압으로 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라며 방역지침을 어기면서 탄압을 받는다고 억울해할 때가 아니라 스스로 이웃의 생명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방역에 앞장서야 할 때다.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세상의 지탄을 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지탄을 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인류를 위해 솔선수범하여 방역에 효과적인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한달 두달에 끝날 팬데믹이 아니기 때문에 희생하고, 섬기고, 손해보는 기독교적 원칙에 충실하면서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고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지도자들은 바이러스 감염병의 특성을 공부해야 한다.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줘야하며 질병에 대한 미신적 접근을 피해야 한다. 교회가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고 접근해야 할뿐만 아니라 예배형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형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고, 공기 전염의 바이러스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형식의 예배모델을 연구해야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소모임이나 성가대에서 확진자가 빈발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기존의 찬양 일색의 형식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소리 질러 자신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침묵으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예배의 형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큰소리로 기도한다거나 온몸으로 찬양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목사님들이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예배의 형식에서 큰소리로 내뱉는 방식 말고, 내면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 목사님의 강론을 제외하고는 침묵으로 예배하는 방식으로 예배드릴 수는 없을까. 침 튀기며 외부를 향해 외치던 예배형식을, 자신의 내부에서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예배형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계속 그러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비말로 전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가라앉을 때까지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세상으로 외치던 복음의 소식을 이제 자신의 내면에 먼저 적용시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 같다. 남에게 소리쳐 전하는 복음이 아니고 자신 안에서 성숙시키는 복음, 영성의 훈련을 통한 복음으로 예배자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사명이 아닐까.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는 자기변혁을 주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