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

정착할 교회와 거주지

truehjh 2021. 2. 23. 16:09

정착할 교회와 거주지

 

마지막을 어디서 살아야 하느냐의 질문은 어느 교회에 정착하느냐의 질문과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니 일상에서 교회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거주지와 교회의 거리가 문제가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동력이 있을 때는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서 걸을 수 없을 때를 걱정하게 되는 것이 지금의 심정이다. 물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출석 횟수와 신앙이 정비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 교회와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주지를 옮길 때 교회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기는 어렵다.

 

처음 분가할 때의 생각은, 교회와는 연관이 없었다.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영태리에서 얼마 동안 살다가 수영장 옆으로 거주지를 옮길 예정이었다. 어차피 평생 운동은 해야 하니까 수영장 근처가 편리할 것 같았다. 그러나 운전이 가능할 때까지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그 생각을 중지했다. 그리고는, 마음의 정처를 찾기 위해 막내동생네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까도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남동생이 사는 지역에 아파트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내 능력에서 벗어나는 액수에 대하여 이 나이에 책임질 일이나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일단 거주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린 교회에서 떠날 생각은 없었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교회에서 동생 가족과 함께 나도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생 가족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나도 함께 떠나기로 했다(20192). 주변에 있는 교회를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동생 집 근처에 새로 세운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생 가족이 정착되면 나는 다른 교회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에서 다 같이 등록하기로 했다. 그러나 더 멀어진 교회가 마음의 정처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고향교회의 소식이 들렸고, 마음이 자꾸 고향교회로 향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고향교회 옆으로 거주지를 옮길 생각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다시 어려워지는 것 같은 목사님 내외의 상황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사명감 같은 감정이었다. 목사님의 권유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하게 의도나 뜻을 알지 못한다. 단지 설교를 듣고 피드백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들면 참여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 줌으로라도 공동체에 접근해 보려고 수요모임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어렵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비대면으로는 공동체 형성이 가능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원로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다시 답답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정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힘겨운 일을 왜 또 이 나이에 감당하려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근데 뭘 어떻게 하라시는 것일까. ‘어떻게의 문제는 방향성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방식으로 하자면 그냥 멈출 핑계를 찾는 것인데, 고향교회에 대한 생각을 여기서 멈추려 하면 또다시 길을 내어주시고, 또 어느 정도에서 멈추려 하면 다시 길을 내어주시는 것을 느끼곤 했다. 내 욕망의 일부일 수도 있으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한 적이 있었는가. 결단의 순간이 있었는가. 언제나 의존적인 결단만 있었을 뿐 스스로 기꺼이 결단한 적은 기억나지 않는다. 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면서 정착하고픈 교회를 인도받고 싶어서 시작한 기도.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 될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이 시시때때로 흔들렸다. 그러다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예배자로서의 내 무심한 자세였다. 코로나로 인한 예배형식의 변화로 예배자의 자세가 흐트러졌을 뿐만 아니라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교회 생활의 밀착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다시 나를 돌아보며 현재 참석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교회 정착에 대한 마음의 방황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건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건 등록하고 있는 교회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싶은 간절한 바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미리 앞당겨 걱정하는 버릇을 버리고, 거주지가 바뀔 때 그때 다시 정착할 교회에 대한 기도를 드려야겠다.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등록한 교회에서 어떤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목자와 교구 목사님 등 좋은 그리스도인들과 연결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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