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

코로나블루

truehjh 2020. 12. 5. 17:26

코로나블룬가

 

동생가족과 함께 지리산 남원 실상사 하동 여수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마스크를 하고, 조심조심 신경 쓰며 다닌 여행이라서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은 것일까. 뭘 하고 살지? 뭘 하지? 요즘 자다가 깨서도 하는 질문이다. 가끔 이럴 때가 있긴 하다. 일부러라도 뭔가를 도모해야 하는데 뭐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갑자기 삶이 무료해져서 자꾸 서성이게 된다.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하루하루 일상적으로 해오던 루틴이 사라지고 있어서인가? 사람들과 더불어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무료함일 수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에 다니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되자 나타난 증상이다. 운동하러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이 되풀이되면서 일상이 되었는데, 그만두니 허전함이 쌓이는가 보다. 이것 외에는 특별하게 변화된 것을 찾을 수 없다.

 

외부활동 없이 집에만 있으니까, 하루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매시간은 매우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많은 것들이 감사의 조건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데, 하는 일이 없는 것 같고, 할 일도 없는 것 같아서 나른하게 쳐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불루인가 보다. 실제로 내가 남보다 일찍 경제활동을 멈춘 것은 사실이다. 몸이 힘든데 생존을 위해 한계 연령에 이르기까지 일을 해야 한다면 참 슬플 것 같아서였다. 내가 노동 현장은 빨리 떠났지만 두세 가지 정도의 취미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면 노후의 삶이 그리 허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내면의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이고, 다른 하나는 외면의 삶 즉 몸을 돌아보는 운동이다. 하나가 더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취미생활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진행되는 동안에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글 쓰고, 운동하러 다닐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다. 가끔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가벼운 삶으로 안정되고 감사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 많아지고, 절제해야 하는 활동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일상으로 정해놓은 취미생활 중에 하나밖에 할 수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이다.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너무 일찍 삶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 같다. 좀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찾아봐야겠다. 그것이 어떤 일일까.

 

혼자 가만히 앉아서 글 쓰는 일만으로는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드는 외부의 동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글 쓰는 취미 하나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서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어떤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사도 될 수 있고, 바느질도 될 수 있고, 가르치는 일도 좋은데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지금 나에겐 활동적이면서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필요하다. 경제활동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취미생활에 불과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삶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내가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취미생활은 누가 뭐래도 사람과 즐겁게 지내는 일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얻는 행복과 만족감을 누리고 싶다. 나이 들어갈수록 인간관계에서 오는 만족감과 평화와 잔잔한 기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사랑하는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다. 그것은 이불속의 안온함과 맞먹는 행복이다. 이제는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먼 이웃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삶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라고 확신한다. 팔순이 넘은 어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인해 매일매일의 삶이 의미 있어 진다고 하지 않는가. 현재 내 주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만족하는 삶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 같다.

 

또다시 뭘 하고 살지? 뭘 하지?’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또 찾아오면, 가까운 이웃이나 사랑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을 마음속으로 불러내서 그에게 무엇을 나누어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리저리 요모조모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무료할 틈은 생겨나지 않을 것 같다. 함께 나눔을 도모하는 동안 오히려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그러한 삶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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