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생일일기

_예순아홉 번째 생일

truehjh 2024. 3. 15. 21:54

칠순 생일

 

어느새 내가 칠순을 맞이했다. 칠순을 달리 일러 종심이라고 한다는데,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았다라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도 종심의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좀 뻔뻔해져야 할 것 같다. 뻔뻔해져야겠다는 표현은 뻔뻔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너무 노심초사하며 살았고, 지금도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다. 타인과 평화롭게 살기 위하여 나의 권리를, 감정을, 마음을 도에 지나치게 무시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공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았다라고 하니, 나도 이제부터는 심하게 자기검열 하지 말고, 남의 눈치 너무 보지 말고, 내 감정에 노심초사하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것에 용기백배하여 행동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 아니어서 잘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음은, 며칠간에 있었던 일들의 기록이다.

지난주일 새벽에, 대만에서 워홀 중인 도토리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고모의 칠순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온다는 소식을 비밀로 하라는 그녀의 특명(?) 때문에, 나는 2~3일 전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었단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모두 함께 이태리레스토랑으로 식사하러 갔다. 도토리가 사주는 점심이었는데, 도토리 남친은 장미꽃과 맛있는 쿠키를 들고 왔다. 참 예쁜 젊은이들에게서 칠순 축하를 받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다음 날 월요일에는, 칠순 예배를 드렸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와 조카들과 조카손주, 그리고 본교회식구들과 고향교회식구들이 참석한 예배다. 교구목사님, 고향교회목사님, 가족목사님 이렇게 세 분의 목사님을 한 자리에 모신 이 축하의 자리는 형제들이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며 시간을 즐겼다. 프리지어 꽃바구니는 제부가 들고 왔다. 삶의 주인공이 되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날은 내가 주인공이었다.  기쁘고, 감사했다.

 

안목사님은 시편 23편을 통해 '부족함이 없는 삶'을 말씀하셨고, 이목사님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문구가 적힌 액자를 주셨다. 두 분의 목사님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똑같이 일치하는 말씀으로 나에게 주셨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최근 들어서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투정하던 나의 일상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남은 삶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냥 앉은 것 같은데... 오빠, 나,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앉아있다. 막내 옆에는 제부!

 

 

그리고 오늘,

예순아홉 번째 생일날이다미역국도 끓여 먹지 않았는데 배가 고픈지를 모르겠다. 축하의 메시지로 인하여 충족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서 인가 보다. 밤이 깊어가는 이 시간, 조금씩 시들어가는 프리지어의 향기를 붙들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하루를 마감해야겠다.

 

 

< 감사의 인사 >

 

제가 올해로 일흔 살이 되었습니다. 70년의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전 칠순 예배 때에는, 바쁜 일정 중에도 교회 식구들 여러분이 축하해 주러 오셨습니다. 내가 교회공동체의 일원임을 상기시켜 주는 교구 목사님과 지구장 권사님,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알뜰하게 살펴주시는 목자 권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 부모님의 헌신을 기억하게 해주는 곳, 내 마음의 고향이고 믿음의 뿌리인 고향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제자이자 상사인 제이와 제네바에서 목소리를 들려준 가족같은 제자 연에게 감사드립니다.

 

축하의 자리는 형제들이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런 자리는 보통 자녀들이 만들어준다는데, 나는 자녀가 없어서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부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써주는 든든한 형제들 덕분에 감사한 칠순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걸어 다닐 수 없었던 유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를 업고 다녔던 오빠,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따라다녔던 남동생,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집에서 꼬마친구가 되어주었던 막냇동생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 형제자매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제부와 항상 나를 지지해주었던 큰올케,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집에 얹혀살던 나이 많은 시누이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준 작은올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각자의 일터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젊은 조카들까지 기쁜 얼굴로 참석해 주고 선물과 전화로 축하해주니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70년 가까이 열심히는 살았는데, 남은 것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축하받을만한 일을 한 것도 없고, 그럴싸하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같이 사는 사람도 없고, 집도 없고, 자식도 없고, 돈도 없고, 명예도 없습니다. 이렇게 없는 것이 많지만, 달리 생각하면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지난 삶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됩니다. 어쩌면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준 친구들과 그 밖의 지인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모든 분들이 나에게는 사랑하는 이웃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이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는 장애라는 문제와 싸우느라고 사는 게 좀 힘들었는데, 이제 종심의 나이가 되었으니 마음이 이끄는대로 즐겁고 재미있게 잘 살아야겠습니다.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말씀과 고린도후서 610절 하반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의 말씀에 힘입어 생명이 있는 날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웃과 화평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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