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같이/Health Tech

외로운 식탁

truehjh 2024. 5. 15. 23:48

외로운 식탁

 

며칠 전 아침이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실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천장과 벽면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물 한 모금도 삼키기 어려운 어지럼증이 또 시작되었다. 머리맡 어딘가에 있는 핸드폰을 찾아들 기운도 없는 데다가, 머리를 움직이는 것 역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도 마실 수가 없는데 부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둘째 날엔, 어지러움이 조금씩 가셔서 꿀물과 소금물 몇 숟가락씩 떠 마셨다. 셋째 날에도, 꿀물과 소금물을 마시고, 영양 시럽을 마셨다. 넷째 날, 여행에서 돌아와 오후 늦게 출근한 동생에게 죽 한 그릇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생은 배달시켜 먹으면 되지.’라고 하며 나간다. 사실 죽 먹을 힘도 없거니와 배달시켜 먹으면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람이 왔으니 나 아프다는 소리를 한 건데 그렇게 무심한 대답을 하다니. 하지만 섭섭해할 힘도 없었다. 조금 후에 약과 따끈한 죽 한 그릇을 사다가 식탁에 차려놓고 먹으라고 한다. 한 숫가락도 먹을 수 없었지만 마음이 놓였다.

 

물론 나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엄마는 한동안 1년에 한번 정도 병원에 입원하곤 하셨다. 언제나 전해질 부족이 원인이었는데, 잘 드시지 않는 기간이 오래 지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결과였다. 그러면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셔야 했다. 입맛이 없다고 하시며 식사량이 줄기 시작하면 2주 정도 후에는 정신 줄을 놓으시는 것 같아 보이고, 그러면 얼른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갖가지 검사를 거친 후의 결과는 전해질 부족 즉 영양부족이다. 1주일 정도 입원하셔서 몸의 영양균형을 맞추고 나오시면 또 얼마간은 괜찮으셨다. 동생 집에서 나랑 같이 사실 때는 조금 달라졌다. 엄마가 식사를 잘 안 하시는 기간이 지속되면 얼른 눈치채고 입맛 당기는 약을 처방받아 일주일 정도 드시게 한다. 그러면 식사량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이때를 이용해 엄마가 좋아하시는 간장게장을 사다 드리면 효과는 200%. 응급실로 실려 가지 않으시고 고비고비를 넘기는 비법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증상도 생각났다. 할머니는 한번 누우시면 3~4주 이상 걸렸던 것 같다. 속병 혹은 속앓이로 불렀던 할머니의 지병이었다. 며칠 동안 물 한 방울도 못 드시고 있다가, 물 한 숟가락부터 시작해서, 미음으로, 죽으로, 진밥으로, 그리고 보통 밥으로 식단을 바꾸면서 섭생하셨다. 그렇게 오랜 회복의 기간을 거치면서, 아버지와 엄마의 극진한 효도로 일어나시곤 했다. 엄마와 할머니의 증상을 살펴보면 내 증상은 어쩌면 할머니 쪽일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할머니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내 옆에는 간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 순간 쓰러져도 병원으로 데리고 갈 사람이 없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 그때 찔끔 흘러나오는 눈물 반 방울. 고작 이런 것이 외로움이라니!

 

어지럼이 사라지면 외로움도 사라지겠지! 며칠 동안 누워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이번 속앓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색다른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은 것도 아니다. 며칠간 조금 춥게 지낸 것과 중환자실 친구로 상심해 있던 이유밖에 없는데, 너무 심하게 앓았다. 내가 너무 싱겁게 먹는 것은 아닐까, 너무 적게 먹는 것은 아닐까, 너무 먹는 것만 먹는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계속해서 소화가 잘 안 되어서 식사량이 엄청나게 줄었다. 원래 입맛이 있어서 먹지는 않았지만, 입맛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영양소를 맞추어 먹으려고 노력하는 외로운 식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외로움이 문제가 아니고 고독사가 문제였다. 나도 막상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니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고작해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서 작성 정도였다. 아니 은행계좌의 비번과 일기 등 기록물들의 처리가 신경 쓰이고, 금방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워있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의미는 무엇이어야 하나. 주변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산이 크게 없으니 그냥 죽으면 되는 것일까. 얼마의 기간을 예측하고 준비해야 하는가. 하지만 누가 답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삶은 외로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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