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장애해방

(1) 장애여성의 섹슈얼러티

truehjh 2005. 11. 1. 11:36
 

<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통념 (1)>


장애여성의 섹슈얼러티

- 여성과 무성 사이 -


한정희(050725)


    남녀가 유별하여 굳이 인간을 남녀로 구분하자면 나는 여성이며, 개인적인 특징 정도를 이야기하라면 장애를 가졌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몸의 조건으로 인하여 여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장애인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과 장애인이 함축되어 있는 지칭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여성장애인'이라는 지칭보다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 즉 '장애여성'이라고 불리어지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구별할 때 가장 먼저 생물학적인 조건에 의해서 남녀로 구분하는데 그 범주에서 왜 나는 특별히 장애인으로 구분되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파고들면 여성이냐 장애인이냐의 문제가 뭐 그리 대단해서 복잡하고 깐깐하게 생각하느냐는 반문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여성으로 분류되고 싶은가 아니면 장애인으로 분류되고 싶은가의 문제는 내 정체성 확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여성으로 분류되고 싶고, 여성이라는 의미가 우선하는 장애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싶다.


   최근에 들어서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은 여성운동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급속히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있고, 사회와 가정 내에서의 인식 또한 변화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장애여성의 인권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편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장애여성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에서도 소외되어 있거나 제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조건에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상황 하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차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성차별이라고 한다면 성차별 현장에서의 여성은 마이너리티의 성이 된다. 또한 여성과 장애여성의 차이가 차별로 작용한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여성은 또 하나의 마이너리티 여성에 속하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문제를 휴머니즘 관점에서 보면 여성운동이 인권운동이듯이, 장애여성의 문제 역시 인간의 문제로 보아야하며 그래서 또한 인권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장애여성이 주류의 여성운동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사례가 허다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장애여성의 영역이 여성의 영역에서 제외되어 있는 실정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얼마 전에 어떤 장애인 단체에 속한 장애여성들이 모여서 조직을 갖추고 활동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여성단체 법인을 만들기 위해 여성부(현 여성가족부)에 사단법인 설립 허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단체의 주요활동이 보건복지부의 소관업무로 구성되어 있어 여성부는 주무관청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고 한다. 그 단체의 장애여성대표는 장애를 가진 여성의 문제를 가지고 여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면서 막막함을 느꼈다고 토로 했으며, 그 상황을 전해들은 장애여성 당사자들은 장애여성의 성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또다시 절감하며 확인하게 되었다. 

 

   장애여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여러 가지 시각으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특히 성(sexuality)과 관련된 관점으로 보면 여성의 경험과 장애여성의 경험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섹슈얼러티는 성적인 것의 특질을 지칭하는 추상명사로써 고정되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다양성과 차이를 가지고 변화하며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성(sexuality)은 태어날 때 이미 주어지는 생물학적인 성(sex)과 태어난 이후에 사회적으로 학습되어진 후천적 성(gender)으로 구별할 수 있다. 선천적 성(sex)이란 개인이 태어날 때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일종의 귀속적 지위(ascribed status)의 성질을 가진 것이나, 후천적 성(gender)이란 일단 태어난 이후에 개인의 정신역학적, 심리적, 사회문화적인 환경요인(environmental factors)에 의하여 획득되는 성취된 지위(achieved status)의 성질을 가진다.1)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장애여성의 성(sexuality)을 규정하기는 매우 복잡한 일이다. 장애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가족 내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에 대한 성역할 기대가 낮아서 왜곡된 성인식을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또한 신체적 특징이나 능력에 대하여 낮은 사회적 가치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성역할 학습과정에서 여러 가지 혼란을 경험하게 되면서 진정한 자신의 성정체성을 형성하기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장애여성의 성(sexuality)은 숨겨지고, 무시되고, 부정된다. 더욱이 장애여성은 여성으로 기대되지 않으면서도 성폭력의 대상으로 존재해 오고 있어서 인간의 기본적인 성적권리는 아직도 이차 또는 삼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장애여성의 성(sexuality)에 관련되어 있는 삶의 구체적 정황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함께 고민하며,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