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장애해방

(6) 장애여성의 이성교제와 관련된 통념

truehjh 2006. 3. 6. 11:05
 

장애여성의 이성교제와 관련된 통념


한 정 희


일반적으로는 이성 간에 자연스러운 성적 관심이 발생하는 청소년기에 이성교제를 시작하게 되지만 최근의 추세는 이성교제가 점점 보편화될 뿐만 아니라 연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급격한 심신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이성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충동을 갖게 되는 청소년기의 이성교제는 이성과의 사귐을 통해 동성이 갖고 있지 않은 사고와 관심 등을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현상에서 조차 장애를 가진 여성과 비장애여성의 경험에 차이가 드러난다.


사춘기 때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의 성적 경험의 차이를 비교한 연구에서 처음 성적 경험을 한 나이를 조사하였는데, 첫 데이트는 17.7세(비장애여성은 14.5세), 첫 키스는 17.0세(비장애여성은 14.2세), 첫 성적 접촉은 18.2세(비장애여성은 16.1세)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애여성이 비장애여성에 비해 이성관계를 시작하게 된 나이가 늦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파인과 애쉬, 1988).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조사를 통해 장애여성의 이성교제와 관련해서 ‘장애’는 차별과 배제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장애라는 차이와 제한성은 장애여성이 여성이라는 성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심각한  혼란을 경험하게 만든다. 개인은 자기의 신체적 특징이나 능력에 대해서 사회적 가치를 평가받게 되므로 가족 내에서 장애를 가진 딸에 대한 성역할 기대는 아주 낮다. 또한 기대가 낮을 뿐 아니라 남성처럼 꾸며지거나 무성적인 존재로 여겨지면서 양육되기 때문에 성역할의 사회화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다. 이와 같이 장애를 가진 여성의 성별, 혹은 성정체성은 사회적인 의미를 가질 때 그 의미가 분명해 진다고 볼 때 장애여성이 여성으로써의 성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고,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은 부재하다.


이러한 상황은 장애여성에게 정신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도록 이끌고 있는 통념을 통해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림처럼 살아라... 깨끗하게 살아라... ’ 라고 요구하는 인식 속에는 장애여성의 성이 비밀로 남아있기를 바라거나, 장애여성은 남자에 대한 관심을 갖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편견이 감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장애여성은 이성에 대한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통념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남자를 안 만나니까 남자를 모르고, 남자를 모르면 연애도 모르고, 연애를 안 해 봤으니까 슬픔도, 아픔도 모를 것 아니냐’ 라고 하고, ‘대학 다닐 때 당연히 미팅에 나가겠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줄로 아는’, ‘그런 몸을 가지고도 남자들 만나고 다닌다고? ... 다소곳이 있어야 한다’ 라고 한다. 이와 같은 통념들은 장애여성은 성적인 존재(sexual being)가 아니며 영원히 성숙한 여자가 될 수 없는 존재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교제를 하더라도 ‘장애인끼리 데이트하는 것이 아주 좋아 보인다’ 라고 한다. 즉 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교제해야 된다는 통념이다. 따라서 장애여성은 자신 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남성, 학력이 낮거나 경제력이 없는 남성을 선택하도록 강요되기도 한다. 


따라서, 장애여성의 이성교제와 관련된 통념을 통해 장애여성은 성적 느낌이나 욕구를 갖고 있지 않은 존재로 규정됨으로써 성적 주체성이 부정되고 또한 성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즉 사회적 통념 속에서 장애여성의 성(性)은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성이 아니고 감추어지는 성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