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장애해방

(8)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 및 가사노동에 관련된 통념

truehjh 2006. 3. 27. 11:36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 및 가사노동에 관련된 통념


한 정 희


앞에서 다루어 왔던 주제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성도 어느 일정 부분 공유할 수 있는 영역들이었지만, 이번의 주제는 여성 고유의 범주로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인 임신, 출산, 육아 및 가사노동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부분들이다. 물론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분담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특별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인식되어지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로 인한 차별이 남성과 여성에게 전혀 다르게 경험되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기준 가운데 가장 확연하게 구별할 수 있는 생물학적 현상 중에 하나가 생식에 관한 조건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임신과 관계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여성에게 구별되게 요구되어지는 경계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더욱 가중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로 인해 장애여성에게 독특하게 적용되고 있는 가중치가 있고, 그러한 불평등함과 부적절함에서 비롯되는 장애여성의 고유한 경험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유엔의 기본법에도 장애인들이 성을 경험하고 부모가 되는 경험을 하는 일에서 거부당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아기가 생기기를 바라지 않은 거죠.... 혹시 장애아를 낳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배려였지요...’ 와 같이 장애여성은 장애아를 낳을 것이다, 또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어머니가 되기를 포기하거나 포기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전문직에 있는 사람의 시선도 일반의 의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첫 애 낳을 때 의사가 걱정하더라구... 자연분만 못할까봐. 뭘 몰라. 의사가 어떻게 다 알어. 난 그냥 수술 안 하고 낳았어...’. 즉 장애여성은 자연분만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부모가 되는 경험을 하는 일에서 거부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여성은 아기 낳기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는 있지만, 장애로 인해 어머니가 되기를 포기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또한 ‘장애인인데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겠냐며 본인이 키워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왜 내가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몸의 형편에 맞게 해도 되쟎아요...’, ‘제대로 못 키울 것이다’, ‘저런 엄마한테서 자라야 하는 우리 손주 불쌍해서 어떡하나!?’ 등의 인식에서 장애여성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통념이 드러난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대한 불신 뿐 아니라, 장애여성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장애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를 엄마와 격리시켜 키워 주어야겠다는 대안보다는 오히려 엄마가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성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가면서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담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이 여성의 노동력이 유효하다는 판단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여성은 여성의 일이라고 명명 지어진 역할 수행을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여김을 받고 있다. ‘아예 가사를 못하는 사람으로 봤어요...’, ‘장애를 가진 딸이 살림을 제대로 못할 거라 그러면서... 뭐든지 대신 해주려고 하는가 하면... 오히려 더 잘해야 한다고 가르치려고 하고...’, ‘장애여성이니까 살림을 더 잘해야 된다고 오히려 윽박지르는 분위기가 더 우세하잖아요.’ 등등의 인식을 통해 장애여성은 가사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받거나 잘 해야 된다는 압박을 끊임없이 받는다. 반면에 장애여성이 가진 다른 속도를 인정받지 못한 상황과 비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라도 가사노동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경우에는 장애를 극복한 슈퍼장애여성으로 보이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여성장애인은 임신, 출산, 육아 및 가사 등에 있어서 생활에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라고 1998년 12월에 제정된 장애인 인권헌장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여성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여성의 재생산성을 거부당하고 있고, 언제나 결핍되고 모자라는 어머니로 평가되고 있고, 가사와 관련하여 장애여성의 노동력이 끊임없이 의심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