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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마음에서 피는 꽃]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러 가자

truehjh 2006. 3. 6. 11:21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러 가자

 

친구들 몇 명이 봄동산 나들이를 갔다. 언제부터인가 연례행사로 굳어져있는 봄나들이였다. 해마다 3월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자고 전화를 주고 받는 일로 그 행사가 시작된다. 어디에 핀 진달래가 아름답다더라 혹은 어디에 핀 개나리가 아름답다더라 하며 정보를 교환한다. 그리고 나서 각기 자신들의 약국 휴일을 조정하고 바쁜 일정을 맞추어 날이 정해지면, 소풍 전 날 잠 못 드는 아이들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가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떠난다.

 

친구들은 모두 서울의 동서남북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한번 모이기가 만만치는 않지만, 언제나 자원해서 기꺼이 운전대를 잡는 친구가 있어 이동하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다. 운전을 즐기는 그 친구 집에서부터 나들이가 시작되면 적당한 곳에서 하나 둘씩 태울 수 있도록 코스가 정해진다.

 

차안의 승객이 한 사람씩 늘어날 때마다 새롭게 인사하고, 근황을 묻는 일이 되풀이되고, 다섯 명이 다 채워지면 목표지점을 향해 시외로 빠져나가면서 우리들의 수다는 시작된다. 날씨가 전 해보다 추워서 아직 철이 이르다느니, 그래도 양지바른 쪽은 많이 피었을 것이라느니, 높은 곳보다는 낮은 쪽이 좋지 않겠냐느니 하면서 아는 척을 하며 달리는 기분도 꽤 괜찮다.

 

운이 좋으면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곳을 찾을 수 있지만, 너무 부지런을 떨었다든가 혹은 너무 게으르게 날짜를 잡아서 만개한 때를 잘 못 골랐거나 만개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대로 만족하곤 한다. 왜냐하면 물이 막 오르는 진달래 무리도 보기 좋고, 만개한 꽃무리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멀리서 보아도 아스라이 그 모습이 아련하고, 가까이서 보아도 화려함이 장관이고, 그냥 나들이 자체도 즐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 가에서 반겨주는 개나리 울타리를 만나는 것도 흥겹다. 또한 어쩌다가 양지바른 길옆이나 어느 집 마당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흰 목련을 만나는 것은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러 나온 우리들에게 보너스로 주어지는 특별한 기쁨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행운이 주어지면 어쩌면 저렇게 예쁘냐고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가곤 한다.

지금은 도시의 도로 곳곳이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 보도블럭으로 뒤덮여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아스팔트 길 옆이나 담 밑에 부드러운 흙이 드러나 있는 곳에 이름 모를 풀과 작은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주 접하는 것이 개나리나 진달래였으니 뭐 그리 귀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 때는 그 흔한 개나리나 진달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눈으로는 보았지만 마음으로 보지 못했었나 보다.

 

전에는 흔한 것 보다는 뭔가 특별한 것, 가까이 있는 것 보다는 멀리에 있는 것,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것 보다는 잡을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에 가치를 두고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아도 멀리서 지켜보고, 오래 관조하고, 천천히 느끼는 것들이 좋아진다. 더욱이 내 곁에 있는 평범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개나리와 진달래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친구 중에 한 명이 우리에게 물었다. 개나리와 진달래 중에 어떤 꽃이 더 예쁘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정말 우문인 것 같았지만 답하는 우리 모두의 자세는 너무도 진지했다. 운전을 하고 있던 친구가 얼른 대답했다. “난 진달래.”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대답했다. “난 개나리.” 뒤에 앉아 있는 친구가 대답했다, “난 둘 다 예뻐.” 나는 그냥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 “난 선택할 것이 없잖아. 너희들이 다 답을 해버렸으니까...” 우리 모두 깔깔거리고 웃었다.

 

질문을 한 친구는 다시 말했다. 개나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길가 양지바른 곳에서 드러나게 웃고 대책 없이 보여주는 화끈한 사랑 같단다. 우리는 흐드러지게 피어 늘어져 있는 개나리 꽃담을 그려보았다. 진달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큰 나무 사이사이나 바위 틈에 숨어서 야시시하게 웃으며 숨길 듯이 하는 사랑 같단다. 우리는 진달래 군락이 아닌, 군데군데 숨듯이 서있는 가녀린 진달래나무 가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치면 목련의 느낌도 빼놓을 수는 없다. 화사하고 탐스럽게 피어나는 순간은 정말 아름답지만 꽃이 지는 모습은 너무나 초라해서, 옛사랑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낑낑대며 자신을 상하게 하는 참담한 사랑의 뒷모습 같다. 지저분한 색으로 퇴색되어 땅위에 떨어져 있는 목련 꽃잎은 애처럽다 못해 허무하기까지 하다. 우리들은 모두 이런 사랑, 저런 사랑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지만, 꽃의 모습과 견주어 하는 사랑이야기도 꽤 재미있었다.

 

사랑이야기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또한 친구가 이야기를 돌리며 말을 꺼냈다. 처음에 질문을 받았을 때의 느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질문은 경쟁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느낌이나 취향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일 먼저 대답한 친구는 질문을 받은 그 순간 누군가 먼저 대답을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대답했단다.

 

우리네 정서가 얼마나 경쟁적이고 투쟁적이 되어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짐 지고 살고 있는 여유 없는 조바심이었다. 개나리와 진달래라고 한정 지어져서 선택의 폭이 좁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고르고 나면 내가 고를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겨난 조바심이었다. 또한 경쟁의 사회에서 늦어지면 도태된다고 길들여져 있는 우리 의식의 표출이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도록 경쟁과 선택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네 모습에서 경쟁을 촉구하고 이윤의 선택을 추구하는 기업문화가 개인의 삶에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았다. 자연 속으로 꽃을 보러 나온 그 순간에도 겨룸에 대해 길들여져 있는 사고의 도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경쟁이 아닌 협동, 선택이 아닌 어우러진 조화가 우리의 가치일 수는 없을까. 참고 기다리는 것이 포기하고 새로움을 선택하여 나가는 것보다 어리석게 보이며,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라고만 여겨지는 그러한 조바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진정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협동과 조화를 위해 인내하며 기다리는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