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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마음에서 피는 꽃] 두 겹 꽃잎을 가진 연산홍의 유혹

truehjh 2006. 3. 7. 15:01

두 겹 꽃잎을 가진 연산홍의 유혹

 

어느 해의 이른 봄 3월에 연산홍 꽃망울이 가득 달린 분 하나를 받았다. 생일선물로 받은 이 예쁜 화분을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았다. 물론 약국 안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눈에도 잘 보이는 곳이었다. 약을 사러 온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연분홍색 꽃망울들을 보며 즐거워했고, 가지 끝으로 피어나는 꽃망울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미소 짓곤 했다.

 

진달래, 철쭉, 연산홍 등은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야산의 봄꽃들인데, 화분에 옮겨 심어 실내의 온도에서 자라게 하니 야산의 꽃들과는 달리 훨씬 일찍 피어오르나 보다. 어느 사이엔가 화분 속의 연산홍 꽃망울들이 하나씩 둘씩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한 송이씩 꽃잎을 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탄력 있던 꽃망울들은 두 겹의 꽃잎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기대 이상의 우아한 모습으로 피어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작은 종 모양 같기도 하고, 깔대기 모양 같기도 한 화관에서 꽃잎 끝이 5개로 갈라지며 두 겹으로 개화하고 있었다. 바로 겹연산홍이었다.

 

겹연산홍의 꽃잎이 그렇게 두 겹으로 서로를 감싸고 피어났다. 연약한 꽃잎이지만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지탱하면서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듯이 느껴졌다. 꽃 한 송이 한 송이의 모습이 마치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 아이들이 엄마 손을 붙잡고 학교에 가는 모습 같이 정겨웠고, 젊은 남녀가 어깨를 감싸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같이 발랄했고, 건장한 장년이 노모의 팔을 부축하고 있는 모습 같이 듬직하기까지 했다.

 

식물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언젠가 TV에서 엄마 잃은 아기 코끼리를 이모 코끼리나 고모 코끼리들이 돌보아 주고, 동네 아줌마 코끼리들이 서로 돌보아 주는 장면을 보았다. 그 건강한 사회를 목격하고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식물이나 동물의 사회와 견주어 보지 않아도,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보듬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누군가를 보듬고 있을 때, 그리고 누군가의 보듬음을 받고 있을 때 우리는 더없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사회는 여성들의 노동력 즉 돌봄의 노동력이 무시되고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었다. 또한 남성들의 보호능력 역시 거절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각각의 독립을 위해서는 부단하게 애를 쓰지만, 서로 받들어 주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더 고독해지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느낄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럴 때 일수록 더욱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굳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그 물체()의 운동이 준거해 있는 두 번째 물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계에는 수많은 변수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움직이고 결정하는 것에는 너 즉 상대방이 필요하며,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 즉 우리들이라고 할 수 있는 변수가 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드러나려는 노력과 함께 남도 북돋워주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나와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하는 시간을 좀 가져 보아야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배려하고 보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젊었을 때는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을 채우고 튼실하게 하려는 에너지가 더 많이 작용하는 시기이므로 어렵겠지만, 이제 그 시기를 지내고 나면 밖으로 에너지를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웃에게 봉사하고 또한 이웃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또 혼자 하여야만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이 어여쁜 두 겹의 꽃잎을 가진 연산홍 꽃송이들을 보면서, 모두 함께 서로를 돕고,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서로를 감싸 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