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장애해방

(9) 장애여성의 노후와 관련된 통념

truehjh 2006. 5. 3. 01:24
 

장애여성의 노후와 관련된 통념


한 정 희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급속도로 고령화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고령화시대에 걸맞는 웰빙문화를 들먹이며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존귀함을 이야기하면서 노후의 삶에 관한 갖가지의 바램과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화제들은 이 사회의 비주류계층에 속해 있는 사회적 약자이며 소수자인 장애여성에게는 요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장애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로 인해 장애여성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노후에 대한 대책은 거의 전무하다고 말 할 수 있다. 교육환경이 그랬고, 노동환경이 그랬고, 삶의 조건이 그랬다. 그리고 이러한 열악한 환경과 조건으로 인해 사회참여 역시 극도로 제한이 되어 있었다. 사회참여 즉 사회활동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함과 동시에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사회 적응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 또한 자발적 활동의 참여는 사회구조적 유연성을 높이고 삶의 기회를 증대시키는 측면에서 중요성을 띄며, 개인의 삶의 질적 향상과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장애여성에게는 ‘다리도 불편한데... 거기다가 다 큰 여자가... 몸도 불편하니 집에나 있으라...’, ‘힘들게 뭐 하러 나와 다니느냐...’ 라고 하며 사회활동을 제한한다.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장애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한 속에서 살고 있는 장애여성이 자신의 바람직한 노후를 대비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사회참여로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환경의 물리적 조건을 차치하고라도 사회적 인식 속에서조차 장애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통념의 사례를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장애여성의 노후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장애여성의 노후의 삶에 관련하여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며, 부모는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장애를 가진 딸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시집도 못 갈꺼고 그래서 혼자 살아야 하니까 장애를 가진 딸을 위해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꺼니까’ 등의 인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더욱이 장애여성은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함으로써 부모로부터 같이 죽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부모가 죽으면 돌보아 줄 사람이 없으니 함께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은 일이라는 것이다.

  

장애여성의 노후는 부모 뿐 아니라 남자형제에게 의존되어야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남자형제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다. ‘남자동생에게는 부담감이 더 크다고 했었어요. 아마도 오빠가 있었다면 엄마는 오빠에게 부담을 주었겠지요.’ 라고 말한다. 이것은 여성에게 있어서의 결혼은 곧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는 통념으로써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로 부터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부모가 돌아가신 후의 장애여성의 삶은 남자형제에게 의탁되어야 한다는 인식 외에도 ‘수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가면 늙어서도 걱정이 없을 것’ 이라고 여겨 종교기관에 맡겨져야 한다고 한다.


물론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있는 장애여성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결혼한 장애여성의 노후 역시 자녀에게 의존되어야 한다. 아직 어린 자녀에게까지 ‘몸이 불편한 엄마니까 모시고 살아야 한다’ 며 주변에서 자식에게 부양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장애여성은 원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남겨져 짐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무도 장애여성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욱이 노년의 삶에 대하여 장애여성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노후에 관한 소망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단지 노후와 관련하여 장애여성의 삶은 타인에게 짐이 된다고 여겨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