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장애해방

(10) 사회적 통념에 대한 장애여성의 경험

truehjh 2006. 5. 30. 10:48
 

사회적 통념에 대한 장애여성의 경험


한 정 희


앞에서 열거한 많은 사례들을 통해 일상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장애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알아보았다. 사회적 통념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전통과 가치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어지는 사회적 산물이므로 장애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통념 역시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과 사회적 가치관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와 종교적 사회이념은 여성과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여성의 삶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조건들을 둘러싼 부정적인 사회적 통념들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장애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관련된 장애여성 특유의 다양한 경험을 정리해 보려 한다. 사회적 통념에 대한 장애여성의 경험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장애여성은 사회적 통념을 통해 존재가치의 절하, 자기결정권의 침해, 그리고 성역할의 박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첫째, 존재가치의 절하에 대한 경험은 무능한 존재, 없는 존재, 미성숙한 존재, 의존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통념에 의해서인 것으로 드러난다.

무능한 존재란 ‘쓸모 없는, 사람노릇 못하는, 불구폐질자, 바보, 불쌍하다, 게으르다, 재수 없다’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없는 존재란 특히 사회적 역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있는 듯 없는 듯, 다소곳이, 가만히, 죽은 듯이, 인형같이, 기대를 하지 않는, 숨기고’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미성숙한 존재란 ‘어린아이로, 애기 같이, 아이 취급을, 가엾은 공주로’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의존적인 존재란 ‘도와주고 보호하려고만, 기생하고 사는, 데리고 살아야, 남자동생에게, 오빠에게 부담이 되는’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둘째, 자기결정권의 침해에 대한 경험은 선택권을 제한하고,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통념에 의해서인 것으로 드러난다.

선택권의 제한이란 ‘주어진 길을 가야하며, 선택권이 없고,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는’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배제는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제껴 놓고,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시키고,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셋째, 성역할의 박탈에 대한 경험은 무성 또는 중성으로 왜곡하고, 여성성을 부정하고, 모성을 부정하는 통념에 의해서인 것으로 드러난다.

무성 또는 중성으로의 왜곡이란 ‘그림처럼 살아라, 깨끗하게 살아라, 천사의 이미지화, 수동적인, 남자처럼, 중성적인 이미지를’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여성성의 부정이란 ‘월경은 쓸모 없는 것, 연애를 할 수 없다는, 주제를 모른다고, 여자 취급 못 받는, 싫어할 꺼라는, 버림받고 상처입을세라’ 등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모성의 부정이란 ‘그래도 애도 낳고 다 하네, 손가락 발가락 다 있냐고, 한 명만 낳아야 한다고, 아이도 못 키우는 줄로, 애를 어떻게 키울 꺼냐구’ 등 임신에 대한 의문과 육아에 대한 불신의 인식을 통해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장애여성의 생애주기별 발달과업과 관련하여 출생 또는 장애 확인 시, 취학과 진학, 직업이나 전공의 선택, 이성교제,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가사, 노후 등의 사항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장애여성의 삶에 폭력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애여성은 정체성 형성과정에서부터 사회적 통념의 영향을 받아 혼란을 경험하게 되며, 사회적 통념을 통해 장애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주어지므로 장애여성이 직면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이러한 사회적 통념의 결과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모성, 결혼, 사랑 등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테마들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장애여성의 삶에서 더욱 심각하고 특수하게 경험되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특별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10회에 걸쳐 졸업논문(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통념에 관한 질적연구,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한정희, 2004)의 일부를 요약하여 보이스웹진에 연재하였다. 부디 이 글들을 통해 장애여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부족한 글들을 마지막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