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미국&멕시코 1999-2001

[멕시코국경을 넘어(2001)] 멕시코여행

truehjh 2012. 11. 30. 17:01

 

멕시코여행에 관한 보고서 (010107)

 

누군가에 의해 특별한 배려를 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특히 예상치 못했던 사람으로부터 베풀어졌다면 더더욱 감사하다.

 

 

여섯 명이 벤을 타고 길을 떠났다.

그냥 가볍게 나섰는데 차는 멕시코를 향했다.

나를 픽업한 곳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가면 국경을 넘어간다고 한다. 

가는 길에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는 공원 식탁에 둘러 앉아 점심도 먹고,

차 속에서는 과일과 고구마를 먹으며

차창 밖으로 저 멀리 허무와 맞닿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 이야기, 결혼 이야기. 노래 이야기, 신앙에 관한 이야기 등...

삶이라는 거대한 물결 끝에서 찰싹거리는 잔잔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심연의 노도와도 같은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우리는 여행 자체를 즐긴다기 보다는

서로는 배려하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에 더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 같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 가노라면 미국과는 완연한 경계를 느끼게 되는데,

개발되지 않은 풍경들이 계속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우아하고도 세련된 말로 포장해서 자연 그대로의 미가 남아 있다고 말했지만,

빈부의 격차로 빚어지고 있는 삶의 질적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여러 번의 통행료를 내고 도착한 곳은 적, 백, 녹 삼색의 멕시코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항구도시였다.

도시의 중앙은 무질서 같은 질서로 차들이 움직이고 있고,

사람들은 길을 건너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들이 분주해 보였다.

그곳에서 갑자기 나에게 도전되어 오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걸어야 하는 문제였다.

미국같이 조금을 움직여도 차로 이동하는 편리함을 이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날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 고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접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된 훈련일 것이다.

그나마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지만,

새로운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몹시도 어리둥절해 했다.

 

그날 저녁 아늑한 숙소를 정하고 바닷가재로 훌륭한 성찬을 마쳤다.

우리 일행은 곧 넉넉하고 자유로운 기분이 되어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불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 넓은 광장에 이르러 나는 나의 자유를 위해 걷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걷기 싫은 자유를 위해 낯선 이국 땅 밤의 광장에 홀로 남아 있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누군가 다시 돌아와 나를 걷게 하지 않았다면 두려움과 영원한 외로움에 질식해 버렸으리라.

방파제를 따라 긴 길의 가로등 아래를 천천히 걸어갔다.

흔들리는 내 그림자를 직시하며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걷는다는 것...

발가벗은 채로 거울 앞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순례의 길에서 만난 모든 사건들은 우연이 없다고 한다.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 질 수밖에 없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이 여행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나는 왜 떠나야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를 위해서 시작된 것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감사함에도 불구하고 감상과 사실은 구별 지어 놓고 싶다.

 

어딘가에서 시간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울렸다.

시간마다 적당한 간격으로 울려오는 은은한 소리가 너무 정겨웠다.

하지만 복잡한 심경이 정리되지 않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유리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 너머로 전개되고 있을 야경을 떠올려 보고,

여러 번의 종소리를 들으며, 오랜 시간동안 지금의 의미를 생각했다.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한 단편들이다.

나는 지금 미국에서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무엇인가는 무엇일까.

왜 아직 삶이 이렇게 힘겨울까.

지난 해는 삶의 어두운 그림자들의 응어리를 풀어내야 하는 한 해였다.

큰 격동의 시간들이었는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상처들, 아프게 거절되었던 소망들, 내 삶을 규정지었던 운명적 사건들,

그것들의 쓴 뿌리를 뽑아 버리고, 방황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어린시절의 분노에서 벗어나 성숙한 자유인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잡아 보자.

나 스스로를 제한하지 말자.

얽매어 있던 사반세기의 세월을 넘어 나의 참모습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춘기시절의 분노에서 헤어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는 영원히 가버린 그 친구를 생각하면

과거의 시간들이 그리 가슴 아프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린 마음을 긴장감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새벽녘 잠결에서

삶이 좀 단순해지고, 기뻐지며, 가벼워지고, 밝아지는 꿈을 꾸었다.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내 삶을 운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

 

다음날 아침에도 어디론가 또 걸었다.

많은 인파 속에서 거리를 서성이다가 길거리에 있는 상가에서 아침을 먹은 후,

상당한 정보를 입수하고 라부파도라로 떠났다.

차를 타고 가면서 밖을 보았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 부드러운 곡선의 야산들, 작은 평야들, 키 작은 원주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와이와 멕시코 두 곳에만 있다는 분수 같은 파도를 향해 갔다.

가는 길에서 만난 파도들이 아름다웠다.

평행선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아니고 둥그런 물결 파도처럼 보였는데

아마도 그곳 바다 밑의 지형 때문일 것 같다.

분수같이 솟아오르는 파도가 있는 라부파도라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어서

많은 상가와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열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원주민 복장을 하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남자,

성냥팔이 소녀를 연상케 하는 꼬마 아이들 등이 함께 어우러져 시끌벅적한 유흥을 북돋웠다.

거기서 밀려오는 파도가 아닌 솟아오르는 파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파도가 솟아오를 때마다 두 겹 세 겹으로 펼쳐지는 무지개를 보며 우리는 환호했다.

나는 새로운 사실을 경험하는 것이 기뻤다.

고정된 하나의 관념이 깨지고

새로운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해안을 따라 각각 다르게 펼쳐지는 정경들..

바닷물의 색깔들..

수십 겹으로 밀려오는 파도들..

그리고 서로를 세워주고 싶은 가슴으로 도란도란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 근처의 도로에서

많은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흥정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보았다.

도로에서 행해지고 있는 노동을 통한 치열한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