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왜 고난이 왔느냐라는 질문이 아닌, 고난으로(부터) 인해 변화되어야 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고난에 관한 질문에서 새디즘적인 하나님 묘사나 매저키즘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비판되어야 하며 단지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의미심장한 고난이어야 한다.
- 지금 당장 물어야 할 것은 불행의 제거 가능성 또는 그 불가능성에 관한 물음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에서 누가 주체인가에 관한 물음이다.
- 인간이 고난이 사라졌으면 하는 기대에 의존하면 할수록 실제로 고난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은 점차 약화된다.
- 고난 받는 자를 위한 모든 도움은 고난의 동시성(Synchronization) 혹은 동시화(Gleichzeitigwerden)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러한 도움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기우는 우월한 자선에 그치고 만다.
-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가만 선택할 수 있지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아니면 고난으로부터 해방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없다.
- 삶의 연인
- 예수의 수난사에는 결정적안 전환이 일어난다. 겟세마니에서 골고타에 이르는 길은 ‘자기애적인’ 희망으로부터의 결별이다.
-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 있다.
- 안티고네는 그에게 ‘그러나 분명히 나는 미움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기 위해 태어났습니다.’라는 유명한 대답을 했다.
- 영혼은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허무 속으로 들어가 사랑하거나 최소한 사랑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 하느님 자신이 다가와 영혼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사랑은 십자가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십자가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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