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기
요즘 도토리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즐기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어폰 한쪽씩을 나누어 끼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나 유행하는 노래를 듣곤 한단다. 어느 날은 나의 귀에도 이어폰 한쪽을 끼워주면서 같이 듣고 놀자고 한다. 최근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를 소개하며 즐거워하는 도토리의 흥에 맞춰 나도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가사를 따라 노래를 불러본다. 50대 중반의 어른과 이제 열 살인 아이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대는 모습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웃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아니 매우 우스꽝스러운 진풍경으로 보이겠지만, 그런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과 아이는 즐겁기만 하다.
어른과 아이의 놀이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청룡열차 놀이를 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청룡열차에 탄 것이라고 하며 함께 히히덕거리면서, 목에 베개를 받치고, 덮은 이불을 두 손으로 꽉 잡고, 같이 소리를 지른다. ‘으...악... 으아악...’ 침대 이불 청룡열차는 허공에서 떨어질 위험도 없고 속이 메스꺼울 염려도 없다. 두 명의 승객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다른 어느 날엔 8마일 거리 안에서 무전기 사용이 가능하다는 모토롤라 워키토키 한 쌍을 나누어 가지고는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서 접선을 한다. 버튼을 누르고 ‘나와라, 오버’를 외치면서 태평양 건너에 사는 사람과 통화하는 것처럼 엄숙하게 대화를 한다. 이러한 수다도 굉장히 신나는 일이다. 또 다른 날, 예기치 않게 여유의 시간이 생기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캔디, 빨간 머리 소녀, 천사들의 합창 등의 TV 프로그램을 보고 또 본다.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하다가도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슬퍼하기도 한다. 장면의 변화에 따라 함께 울고 웃는 것 또한 너무 즐겁다.
이렇게 나와 도토리는 놀이라는 도구를 통해 공감하는 기회를 갖곤 한다. 물론 의도적인 연습이나 훈련은 아니다. 시간을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능력이 향상되는 즐거운 놀이에 참여하는 것일 뿐이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형성되는 공감의 깊이는 어떤 것일까. 나로서는 반백년 정도의 시간을 뒤로 돌려 보는 것과 같다. 어렸을 적 그 시절의 감정과 정서가 되살아 나오고,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으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다고나 할까.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감지하는 것, 상대방이 무엇을 느끼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라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empathy)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보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나의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준에서 생각해 보고 느껴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도토리와 나는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단순히 도토리와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공감이 아니라 다 큰 어른과 아직 어린아이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감의 한계가 어떤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인간을 타인과 결합시키는 힘, 고립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개인의 특성을 허용하고 통합성을 유지시키는 힘,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역설을 성립시키는 힘은 바로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른인 내가 아이로 돌아가 조카아이와 공감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자궁으로의 회귀이며, 모체와의 합일을 향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기 때문에 누군가의 고통과 분노,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감을 표현하는 능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훈련을 받아야 하고 표현하는 연습도 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회적인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것은 내 이웃의 일이고 주변의 일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전체와의 합일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과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합일의 경험이 불충분하다.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나와 너, 남자와 여자, 유년과 노년, 제자와 선생, 자녀와 부모, 인간과 자연 모두가 둘이면서 하나가, 하나이면서 둘이 되는 경험 즉 ‘공감하기’를 통한 합일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의 삶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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