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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도토리선생님 - 용감하게 떠난 여행

truehjh 2008. 5. 3. 16:19

  

도토리가 네 살 적의 일이다. 나는 태국에 사는 지인의 배려로 태국 고산지대의 선교지에 가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 룸메이트였고, 한국 약사이면서 미국의 침구사 면허를 가지고 있는 친구와 같이 선교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와 내 친구는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이므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도토리의 엄마가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리하여 도토리 엄마는 네 살인 도토리를 데리고 태국으로 그들의 첫 번째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30일 정도의 기간으로 태국에 머물면서 쉬기도 하고, 여행도 하고, 의료봉사와 함께 선교지도 돌아볼 예정이었다.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선교지 방문 시에 필요한 약품들은 현지에서 구입하거나 우리들 짐 속에 나누어서 가지고 가기로 했다. 두 명의 보행 장애인, 네 돌이 아직 안 된 꼬마 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 이렇게 네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조합이다. 자유여행을 떠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조합이라고 누구나가 생각할 것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믿고 용감하게 떠났다.

 

도토리는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체구가 조금 크지만 순하고 점잖은 편이었다. 물론 태국에 살고 있는 지인이 현지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분이었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태국 음식이 무엇인지도 잘 알아서 추천해 주시기로 했기 때문에 도토리의 현지 적응력에 대하여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지만 네 살의 아이는 우리의 걱정보다 훨씬 더 잘 지냈다. 어른보다도 현지 음식에 더 잘 적응하고, 땀이 쏟아지는 더운 기후에서도 잘 견디며, 밤이든 낮이든 필요할 때마다 잠도 잘 자고,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현지인과의 소통을 어른들보다 더 잘 하고 다녔다. 도토리는 동네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져서 집 주위를 오고 가면서 손인사를 하고 다닐 정도였다.

 

도토리는 누구보다도 여행 체질이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며, 잘 따라다니는 것만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것인데, 거기다가 불편한 고모의 손을 붙잡아 주기도 하고, 작은 심부름도 곧 잘 해 주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라는 노래로 식사기도를 했고, 오랜 운전으로 어른들이 피곤해질 때쯤 되면 뿅뿅뿅뿅... 병아리들은 알고 있나 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라는 귀여운 노래로 모두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들었다. 앙코르를 요청하면 신이 나서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살아...’, ‘삐약 삐약 병아리,...’,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깊고도 넓도다...’ 등 동요와 복음송을 번갈아가며 계속해서 불러주었다. 메들리로 부르는 노래였다. 그 많은 노랫말들을 어찌 그리 잘 외워서 부르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열 곡이 넘는 레퍼토리로 오전에도 오후에도, 오늘도 내일도 지치지 않고 불러주면서 피로회복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도토리가 자랑스러웠다.

 

우리 일행이 어느 정도 관광을 마무리하고 있을 무렵에 한국의 모 교회에서 온 찬양선교팀과 일정을 같이하게 되었다. 태국국립나환자병원, 아동여성보호소 등으로 위로공연을 다닐 때도 도토리는 그 팀의 언니 오빠들과 함께 뿅뿅뿅뿅... 병아리들은 알고 있나 봐... ’를 흥얼거리며 다녔다. 고산 지방으로 갈 때는 1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 버스 속에서도 웃고, 노래하고, 잠자기를 반복하면서 말썽 부리는 일 없이 잘 견뎠다. 도착한 곳은 물 한 컵으로 양치질을 하고 고양이 세수를 해야 할 정도로 물이 귀한 지역이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상황인데 도토리는 짜증 한번 안 내고, 투정 한번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은 각자가 살아가는 태도에 달린 것 같다. 아이든 어른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든, 주어진 상황과 형편에 적응하려는 노력과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도토리와의 여행에서 깨닫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마음이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아이처럼 신뢰하는 태도는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든지 빛을 발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려고 애쓰는 어린 도토리... 그녀처럼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것처럼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산다는 것 역시 아주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