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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도토리선생님 - 가고 오는 생명

truehjh 2008. 4. 4. 16:20

  

남동생과 작은 올케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임신 소식을 보내왔다. 새 생명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시기 3일 전에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자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이미 만나 뵙지 못하게 될 할아버지께 드리는 그 아이의 선물이었나 보다. 할아버지인 나의 아버지는 병상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 예고를 듣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는 작은 아들의 손을 꽉 쥐어주셨다고 한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병상에서 아들 가정에 보내는 아버지의 응원이고 축복이었음이 확실하다. 그 가정에 아이가 생기기를 바라셨던 아버지의 오랜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을 게다.

 

우리 가족에게는 드라마 같은 역전이 펼쳐졌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계시는 동안, 엄마의 태 안에서는 한 생명이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응급실에서 갑자기 죽어가고 있는 한 사람에게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잉태의 소식을 전하는 어떤 드라마의 한 장면보다 더 감격적인 실제 상황이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생명과 삶을 향해 움트는 생명이 동시에 스스로의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아마도 우리의 가족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이 사건이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다. 슬픔의 한가운데서도 기쁨이 움트고 있는 자연의 조화로움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남동생 부부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또 다른 방법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한 번 시험관 시술을 시도하고 있는 중에 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남동생 내외는 시험관 시술을 중지하고,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중환자실에 계시는 아버지의 병상을 방문했다. 아버지를 뵈러 다니는 효심 때문이었는지 치료를 중지한 사이에 자연임신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개월쯤 후에 아이가 태어났다. 건강하고 예쁜 여자아이였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길에서 맞이하는 아주 큰 사건임이 분명하다. 이 신비의 사건은 인간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 주며, 살아야 할 원인을 제공해 주는 것 같다. 태어난 딸을 보고 기뻐하는 남동생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그 사건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지, 그 사건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역동적이게 하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를 잃는다는 것 또한 부모가 되는 것 못지않게 큰 사건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묵상할 수 있었고, 자식으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부모를 잃는 체험은 신 앞에 한 인간을 단독자로 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생명은 이렇게 가고 오는 것인가. 나는 아버지의 죽음과 조카의 탄생이 연이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생명은 무제한의 신비함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살아가면서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큰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과정임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온다는 사건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왔다가 떠나가는 사건이 인간의 삶을 성숙시키기 위한 얼마나 큰 계기가 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