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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도토리선생님 - 우리 고모, 장애인이다!!!

truehjh 2007. 12. 19. 22:00

우리 고모, 장애인이다!!!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생인 도토리가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군데 시간이 좀 남아서 함께 왔단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도토리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나는 예고 없는 방문에 잠시 당황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꼬마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표현하며 그들에게 접근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내가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과는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이 편하다.


바로 그 또래 아이들의 특징인 호기심과 모방성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길을 가다가 가끔 나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면서 힐끔힐끔 내 얼굴의 표정을 살피며 가는 어린아이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은 무엇이 궁금한 것일까. 균형감을 잃고 걷는 내 걸음걸이가 신기하기나 한 듯 흉내를 내며 걸어오는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게 될 때면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모방하며 자라난다고 하지만 왜 하필이면 숨기고 싶은 모습들을 크게 확대시켜 재현하는 것일까. 흉내를 내며 따라 하는 것이 아이들의 본업인 것을 감안한다면 나의 감정은 참 속 좁은 어른의 마음 현상이다. 


이 아이도 평범하지 않은 나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고 싶을까. 잠시 생각하며 어색한 눈빛으로 꼬마 손님을 맞이했다. 이런 나의 소심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토리는 집에 있는 나를 보자마자 자기 친구에게 인사를 시킨다. “우리 고모, 장애인이야. 왠지 알아? 아주 어렸을 때 열이 많이 나더니 다리가 마비되었대. 다리를 구부릴 수 없어. 구부리려면 무릎을 만져야 돼. 그리고 보조기를 올려야 돼, 이렇게...”라고 소개하면서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난 그 남자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도대체 어떤 반응을 할까. 그 아이는 도토리의 설명을 듣자마자 “우리 아는 형아도 장애인이다. 여기도 마비됐고 여기도 마비됐어...”라고 말하며 다리 여기저기를 가리킨다. “그러면 글씨 쓸 수 있어?” “3반 아이는 왜 장애인인 줄 알아? 세 살 때 교통사고 났대. 그래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거래...” 아이들끼리의 관심사란 이런 것이다. 더 이상의 흉이나 모욕이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호기심 어리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보면 그냥 그런 현상일 뿐이다.


도토리는 자신의 고모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움이 아니고 고모의 특징 아니 오히려 자랑거리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한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그것은 부끄러움이었고 수치스러움이었다. 누구의 죄로 인해, 누구의 부덕으로 인해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그것은 집안의 커다란 굴레였으며 걱정거리였다. 장애를 가진 자녀의 앞날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모의 부채감이 막중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짐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장애의 문제는 오로지 개인이나 가정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그러나 장애로 인한 개인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같이 공감하며 책임을 가지고 풀어나간다면 장애는 더 이상의 장애가 아닐 수도 있다. 더욱이 장애의 사회화 문제를 이해함으로써 인간애 회복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임을 인식하면서 함께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회 수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들은 장애를 그냥 있는 대로, 그냥 보이는 대로 받아들여 주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도토리와 도토리의 친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