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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마 22 : 34~40)

truehjh 2010. 2. 1. 16:08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내가 ‘왜 내가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려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예수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요구한 계명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에게 물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하셨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 뜻이 달려 있다.”

- 마태복음 22 : 34~40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대답이다. 이러한 내용은 마가복음 12 : 28~34, 누가복음 10 : 25~28 에도 공통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요한복음 15 : 12 에는 ‘나의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레위기 19 : 18 의 ‘너희는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계명은 모든 계명의 핵심이고, 다른 것은 주석에 불과하다고 어떤 율법학자가 말했다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계명들을 문자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들의 근본인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자기 몸처럼 이웃사랑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하기 쉬운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이웃을 사랑하기 전 자기 몸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 그것인데 나는 이 전제로 인해 큰 위로를 얻곤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타인을 사랑한다. 아니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아닌 다른 방법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즉 타인이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따스한 감정으로 보듬어 안는 사람은 타인도 따스하게 보듬어 안을 것이고, 자신을 냉정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도 냉정하게 사랑할 것이고, 자신을 무심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무심하게 사랑할 것이고, 자신에게 상처를 내가며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상처를 입히며 사랑할 것이니까 말이다.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 본다면..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미리 알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인간의 사랑은 그만큼의 한계가 있어 무한하거나 조건 없는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러므로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인간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을 아닐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생명, 나의 생명을 사랑하여야 이웃사랑이 가능한 것이다. 비록 꿈 없고 초라한 나의 삶이지만 나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신 예수의 사랑을 감사하며 나의 삶을 사랑하여야 한다. 나의 삶을 저주하는 곳에 이웃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 되는 것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삶일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