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장애인으로서 세상과 접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야 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제일 먼저, 제도권내의 장애인 교육 문제를 통해 조금씩 부딪치기 시작했다. 수유리로 이사를 했으니 학교를 전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사하기 전에 다니던 학교가 정규과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도권 내의 학교에서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에 있으면서 심심하면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은 빨주노초파남보 상상의 나라였다.
구락부선생님이셨던 삼촌은 어린 조카가 미술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고 계셨던 삼촌은 어린 조카의 소질을 알아보고는 그림 숙제를 내주곤 하셨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씩 검사를 하러 우리 집 그러니까 삼촌의 큰 누나 집에 오곤 하셨다. 크레파스, 스케치북, 색연필 등을 선물로 주셨고, 때로는 화방으로 직접 데리고 가기도 하셨다. 그로 인해 나는 지금도 대학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대학로에 대한 나의 기억은 10세의 소녀시절로부터 시작된다. 그 거리는 꼬마조카에게 좋은 화구를 사주려는 학생삼촌의 갸륵한 희망이 움트는 거리였다. 서울대 쪽으로 개천이 흐르고 길 건너편에는 화구를 파는 문구점이 여러 군데 있었다. 그 중 한 허름한 화랑에 삼촌을 기다리는 작은 아이가 서있다. 아마도 삼촌은 나를 화랑에 맡겨 놓고 학교 안으로 잠시 들어간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에 대한 이 아름다운 기억은 여기서 멈춘다.
삼촌은 여름방학에 구락부학생들을 데리고 한강에 나가서 수영을 가르치시다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림의 후원자이셨던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난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나의 소망은 곧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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