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기다리며...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들어와서 울던 사건이 일어난 그 때가지만 해도 엄마는 딸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엄마는 딸의 장애를 고쳐보려고 이런 저런 방법에 의지하며 애를 썼지만 고치지 못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기적을 기다리며 치유은사집회에 매달리기 시작하셨다. 치유집회에서 일어난 불가사의한 기적들을 전해들을 때마다 자신의 딸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집회에 쫒아 다니셨다. 물론 잘 걷지도 못하는 나를 업고, 끌고, 데리고서 말이다. 엄마가 나를 등에 업고 찾아 간 곳은 변계단권사의 치유집회였다. 아마도 남산고갯길을 넘어 필동 어느 지점에 유명한 집회장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분 말고 또 한분의 유명한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곳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 집회장소의 분위기는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단 위에 흰옷을 입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앉아 계시는 그분의 이미지와 함께 눈에 선하다.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방방곳곳에서 찾아왔다. 우리도 그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분은 환자 한사람 한사람씩 이야기를 듣고 안찰기도를 해주셨다. 그곳에 도착한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한다.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을 웃고, 어떤 사람은 박수를 치고, 어떤 사람을 가슴을 친다. 앞으로 한사람씩 나가면 비는 공간만큼의 거리로 옮겨 앉으며 순서대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면 엄마와 함께 그분 앞에 올라가 앉는다. 엄마는 소아마비 걸린 딸을 대신해서 눈물로 간절히 그분에게 이야기하고 나는 그 앞에 눕는다. 그분은 내 왼쪽 다리를 쓰다듬으며 기도한다. 어느 날은 하얀 옷을 입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어느 날은 따뜻한 미소를 가진 예쁜 천사를 만난다. 하지만 내 다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도를 받은 후에 힘이 생겼다는 확신과 함께 짚어보면 힘이 생긴 것 같다가도 몇 걸음 더 걸으면 맥이 풀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간절한 순간도 있었음이 신기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썸머셋 모엄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선가 비슷한 상황이 기술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15~16세 정도의 나이였을 때 내일 아침 눈뜰 때까지 자신의 다리를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대로인 다리를 발견하고는 그 순간 이후부터 기도드리는 일을 멈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 그런 것... 내 마음이 그런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8살 정도의 나이는 아직 어리고 뭘 모르는 나이였다.
나는 다리가 나을 것이라는 믿음은 없었다. 오고 가는 길에서 느꼈던 재미있는 기억이 더 의미 있었다. 휴가 나오신 아버지 등에 업혀서 치유집회에 가는 것보다는 아버지 머리를 꼭잡고 목마를 타면서 명동거리를 누빌 때가 더 좋았다. 아버지 키보다 훨씬 높은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고, 나를 잡아 주시려고 아버지 옆으로 바짝 따라 붙은 엄마를 보면서 부모의 사랑을 만끽 하였던 것 같다. 눈 쌓인 남산의 기억도 기분 좋은 기억 중의 하나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커다란 눈썰매를 오빠가 앞에서 끌고 엄마는 뒤따라오면서 남산의 눈을 헤치고 명동까지 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5~6학년의 오빠가 그 추운 날에 동생을 나르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남산을 넘나드는 것이 신나는 놀이 중의 하나였을 것이고 또한 영웅담으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잘 걷지 못하는 동생을 태워 날라야 하는 어린 썰매기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애타게 기적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은 아버지의 적당한 제지로 인해 어느 정도에서 멈췄고,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방촌에 살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수유리로 이사를 갔다. 그 후에도 나는 가끔 엄마를 따라 치유집회를 다녔지만 그냥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따라 다녔다. 하여간에 나는 엄마의 말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아이였다.
가족에 얽힌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멈추어도 될 것 같다. 내 가족들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장애인인 나 자신이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만큼이나 고단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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