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장년시대(2008~2019)

e중년기마무리 - 은퇴

truehjh 2011. 6. 4. 16:47

은퇴


은퇴는 개인의 의지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주변 환경 즉 연령이나 건강상태, 사회적인 제약 등의 물리적인 제한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아직 은퇴의 나이는 아니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그러한 제한들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포기하는 마음으로 허둥지둥 그 과정을 겪어가면서 은퇴 후의 삶도 나름대로 여유로울 수 있도록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나는 은퇴라는 단어를 경제적인 활동에서 물러나 있다는 의미뿐 아니라, 일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상황에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본적인 틀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만 된다면 수입과 직결된 경제적인 활동이나 일에 대한 염려와 집착을 버리고, 오히려 소비를 줄이면서 경제 외적인 재생산에 투자하거나 몰입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경제의 수단으로써가 아닌 노동 그 자체를 즐기며, 미래의 허구가 아닌 현재의 존재 자체를 감사하는, 그러한 새로운 마음의 시작이 은퇴여야 할 것 같다.


나는 가난한 목회자의 딸로 자라면서 소박함과 절제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소박함과 절제가 어떤 면에서는 더 편리하다는 것도 배웠다. 그것은 오히려 부족함과 결핍의 비참함을 경험하면서 배운 지혜다. 물론 개인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나 틀은 누구에게나 같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세끼의 식사가 기본적인 조건이며 틀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경제 상태나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가 나에게 주어진 조건이며 틀이라고 한정해 놓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의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 지고, 보다 진심으로 현재의 내 존재에 대하여 감사하고 싶어 지는 여유가 생긴다.


젊었을 때는 희망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삶에 대한 그 욕심을 버리고, 소비적인 가치도 과감하게 버리고, 삶의 단순함과 소박함의 가치를 추구하고 산다면 지금의 약함과 부족함에 대하여 감사하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힘이 있는 순간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성경은 가난한 자의 복을 말하고 있는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