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1-02) 중환자실의 아버지

truehjh 2011. 8. 8. 17:14

 

1998. 09. 02-15. 중환자실의 아버지


큰아버지 생신 다음날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건강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발에 힘이 없으신 지 문턱을 잘 넘지 못하신단다.

어제 큰아버지 댁에서도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고 누워서 쉬셨단다. 청심원을 드시고 겨우 힘을 차리신 후에 엄마가 택시로 집에 모시고 왔다고 한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까 화를 내면서 싫다고 하셨단다. 집에 돌아오셨어도 식사를 거의 못하시고 배가 아프시다며 화장실에 몇 번 드나드셨지만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지 않으시단다. 아버지는 변비 같다고 하신단다.

약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관장하고 배를 좀 따뜻하게 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그래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전화가 왔다.

오빠가 아버지를 모시고 성가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오빠의 등에 업혀서 아버지의 방을 나섰다고 한다. 그러니까 엊그제부터 근육의 마비가 나타났고, 오늘 아침에는 연하운동이 되지 않아서인지 물도 넘기지 못하셨으며, 아무런 말씀도 못하신다고 하니 병세가 너무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11년 동안의 긴 투병생활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만해도 딸의 병문안을 혼자서 오실 수 있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니... 하루 종일 방안에서 누워 있어야 할 나에게 아버지의 입원 소식은 충격이었다. 너무 많이 움직이면 출혈가능성이 높다는 기간이지만 나는 아버지를 뵈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 앉아 있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 때문에 동생 차의 뒷 자석에 누워서 아버지가 입원하신 부천 성가병원으로 갔다. 아버지께 마음속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은 내 모든 합리적 사고과정을 방해했다. ‘내가 지금 아버지께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지금 말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을까... 아쉬움과 회한으로 남지 않도록 무슨 말이든지 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아버지 허락 없이 제일교회를 떠난 것을 용서해 주세요. 지금까지 저를 홀로 두신 것이 섭섭하지만 꿋꿋이 살께요. 그리고 장학금 문제는 걱정 마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방법을 연구해 볼게요. 아버지... 마음을 놓으세요.’ 이렇게 되 뇌이며 병원으로 갔다.


중환자실 앞에는 면회를 기다리는 여러 가족들이 다양한 표정을 하고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우리 가족은 시간이 되어 엄마가 먼저 들어가시고 그 다음 차례로 내가 들어갔다. 중환자실 침대 위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뵐 때 그 분의 고통이 절절히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부르며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훌륭한 목사님이고 좋은 아버지예요. 아버지 사랑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 얼굴을 만져본 것 같았다. 그 때 아버지는 나를 차근히 쳐다보시더니 얼굴을 돌리며 소리되어 나오지 않는 격한 감정으로 꺼억 꺼억 우셨다. 몇 번을 그렇게 우셨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아버지 허락 없이 제일교회를 떠난 것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장학금은 잘 사용하도록 할께요. 약속드려요.” 이렇게 말해 버렸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시며 또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준비한 말을 다하지 않았다. 다 말하지 않는 것이 이 분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 같아서였다. 나에 관한 문제를 서운한 음성으로 말한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괴로우실까. 병실을 나와서 많이 울었다. 엉엉 울었다. 아버지와 내가 닮은 점이 있다면 잘 우는 것이라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많은 눈물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나는 자면서도 울었다.


꿈속에서조차 아버지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한 상태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느낀다. ‘아버지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합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처음부터 아버지께서 쾌유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쉽게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인가. 그래서 냉정한 사람인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적다는 것인가. 하지만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검사들과 투약들이 완치의 가능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원인을 규정하고 현재의 상태를 확실히 하기 위한 과정일 뿐임을 누구나가 다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은 아닌가.’ 그러므로 난 조용히, 그리고 평화스럽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도록 도와드리고 싶었다. 혈육의 권리로 그리고 과학의 의무가 그 축복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마음조림을 표현할 자신은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난 면회를 매일 가지 못했다. 면회시간마다 다른 식구들이 아버지를 뵙고 와서 전해주는 말에 의해 아버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뵜을 때의 아버지는 너무 쇠잔한 눈빛을 하고 계셨다. 애처로움, 포기, 그런 것들이 가득 담긴 힘없는 눈이었다. 그 외에 아무런 표현이 없었다.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 것도 없으셨을까.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


그 다음부터 아버지는 계속 수면상태였고 세 번째 면회도 그런 상태에서 나만 아버지를 부르며, 만지며, 바라보며 울었다.


네 번째의 만남에서 아버지는 놀라운 의식으로 나를 반겨 주셨다. 그것은 평소에 나를 반기는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이었다. ‘힘든데 왜 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조금 돌리며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이란 극한 상황에서의 의사소통으로써 강력한 도구였다. 나는 엉엉 울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산소호흡기, 혈관주사, 가래제거기, 영양분 주입호스, 붕대들, 혈전스타킹, 옆 환자의 고통하는 신음소리 등등의 차거운 고통의 색깔보다 돋보이는 평화로움이었다. 물론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이렇게 중환자실에서 네 번의 만남은 애처로움 뿐이었다.

“또 올께요.” 라고 인사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또 다음에 뵐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는 그 인사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목에서부터 더 크게 소리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은 왜 마르지도 않는 것일까.


나는 수술 후 회복기를 이렇게 보냈기 때문에 몹시 허약해졌고, 회복이 잘 되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약국 문을 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응급실로 가신지 15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퇴원하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머리로 올라가는 동맥 4개가 다 막혀 있고 뇌세포가 거의 죽어 있는데도 지금까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셨다니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분일 것이라며 젊은 의사가 놀라워했다. 한 인간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사용한 상태란다. 의사는 지금 간뇌까지 마비가 왔기 때문에 호흡중추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의사, 가족 모두 생명을 포기한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시도는 실낱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었고 아버지만 고통스럽게 하여 드리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퇴원 전 날 우리들은 오빠 집에 다 모여 아버지 방을 정리했다. 그 분이 평소에 사용하셨던 모든 작업도구들, 작은 책상, 낮은 서랍들, 종이 상자들, 실, 풀, 철사, 칼, 자, 두꺼운 종이들, 압핀, 리본, 채 스크랩해 놓지 못한 신문지 조각들... 그 방의 공간을 가득 채운 수많은 소품들을 10개의 큰 박스에 넣어 베란다에 옮겨 놓으면서 그 분의 치밀함, 정확성, 성실함, 아끼고 이용하는 마음, 번쩍이는 두뇌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쪽 벽을 장식한 낡고 오래된 책들, 또 다른 한쪽 벽에 있는 10여 년 동안 계속 해 오신 다양한 신문 스크랩은 치우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 방으로 오셨을 때 생소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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