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1-03) 큰아들의 집

truehjh 2011. 9. 4. 19:43

 

1998.9.15- . 큰아들의 집


퇴원하신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코에 끼워놓고 있었던 영양주입호스를 빼 놓으셨다.

그것을 발견한 오빠와 올케언니와 엄마가 모두 떠들썩하게 화를 내었고 그 즉시 가정 간호사를 불러 다시 끼워드렸다. 분명히 아버지는 그 줄을 뽑으면 금방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분의 의도를 헤아려보려 하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정신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일 것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다음 날 나는 약국 문을 닫고 병원에 들려 치료를 받은 후 아버지가 계시는 오빠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안정된 모습으로 자신의 방에 준비된 환자용 침대 위에 누워 계셨다. 나는 아버지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간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아직 마비되지 않은 왼쪽 손으로 글씨를 써 보도록 시도해 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언어중추와 오른쪽 운동신경이 모두 마비된 상태였고 기억력의 상실과 뇌사된 세포들의 영역이 넓어 갈수록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얼굴 표정으로, 눈물로, 눈으로, 눈빛으로, 그리고 마비되지 않은 왼 손의 힘의 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있는 가냘픈 정신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향한 그 분의 정직한 신앙심일까?


퇴원하신 후 첫 번째 주일에는 식구들이 다 아버지 계신 곳으로 모였다. 그래봤자 13명의 식구들이지만... 이것 저것 정리를 하던 중에 아버지가 노회에서 받으신 기념품 손목시계를 발견했는데 나는 아버지께 그 시계를 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눈을 옆으로 돌려 그것을 보시더니 눈을 깜박거리시며 가지라고 표시하셨다. 누어있는 아비에게 무엇인가 달라고 하는 딸을 보고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잠시 후 엄마가 화장품을 들고 들어 오셔서 나에게 주셨다. 가끔 필요 적은 물건을 사시는 엄마에게 나는 짜증을 냈다. 그 때 아버지의 걱정스런 눈빛이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힘  없는 엄마에게 효도하라는 아버지의 부탁 같았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함께 천국 가자던 남편의 소원이 이제는 부인을 걱정하는 안스런 마음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눈빛...


그 날 우리 모두는 저녁 늦게까지 오빠 집에 있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식구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밖에 모여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배웅시간이 약간 지체되었다. 엄마가 들어 가셨을 때는 아버지가 또 코줄을 빼 놓으신 상태였단다. 두 번째의 시도였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뽑아 버린 것이 아니고, 식구들 모두의 얼굴을 보고 난 후에 다시 의도적인 결단을 하신 것이다. 생명을 가진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외로운 투쟁을 누가 그 깊이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조금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을 뿐이었다. 오빠와 엄마는 그 다음날로 즉시 병원의 간호사를 불렀고 코줄은 다시 끼워질 수밖에 없었지만 생명에 대한 존엄을 인정하는 그 분의 고통스러운 결단에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