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장애로 인한 사랑에의 포기, 상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는 후송병원 원목을 끝으로 제대를 하셨고, 성황당이라는 동네에 교회를 개척하셨다. 그 때부터 우리 가족의 생활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교회라는 구조 속의 일부가 되어갔고, 개인적인 생활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늘 교인들과 함께 밥을 먹었고, 부모님은 수시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했다.
어른들 뿐만이 아니었다.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도 모두 우리 엄마 아버지의 자식들이 되었다. 그들 중에 한 소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황순원의 소나기, 알퐁스도테의 별을 읽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우수에 깃든 눈망울을 가진 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목소리가 미성이어서 교회의 성가대에서 한 몫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를 기회가 많았다. 특별한 예배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그 소년과 나는 이중창을 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가 끼게 되면 4중창의 멤버가 되기도 하였다. 해마다 지역교회 학생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성가경연대회에 교회 대표로 나가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함께 연습했다. 물론 상도 받곤 했다. 우리는 찬송을 같이 부르고, 팝송과 가요를 같이 부르고, 돌아오라 소렌토도 같이 부르면서 편지도 주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여자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는 발이 예쁜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단다. 물론 전해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발상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단지 나는 나의 발이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왼발과 오른발의 크기도 같지 않았고 잘 걷지도 못했다. 나는 너무 슬펐다. 너무 슬퍼서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눈에 보이는 그 아이를 볼 수가 없었다.
우리의 노래는 끝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내 발이 아주 작아서 예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내 발이 예쁜 줄 몰랐다. 아니 예쁘다고 우길 줄 몰랐다. 너무 어려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또 다시 장애가 내 사랑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절망한 나머지 그의 애잔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상관없는 사랑이라 여기고 잊으려고 애썼다.
'Biography > 유년시대(1955~1972)' 카테고리의 다른 글
(8) 수술과 의사 (0) | 2011.10.12 |
---|---|
(7) 순결한 짝사랑 (0) | 2011.05.30 |
(6) 꿈, 그림, 그리고 삼촌 (0) | 2011.05.25 |
(5) 기적을 기다리는 엄마 (0) | 2011.05.23 |
(4) 자아정체성 형성과 아버지 (0) | 2011.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