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생일일기

_ 스무 번째 생일

truehjh 2012. 8. 3. 10:13

1975.03.15


모든 사람은 기억되기를 좋아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 속에는 나도 포함되겠지...

그러나, 어떤 때는 기억되기를 싫어 할 때도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그리고 또 많은 날들을 난 기억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야만 했던 신의 듯에 의해 이처럼 무미덤덤한 삶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Coffee 맛이 너무 좋다. 뜨거워서, 가슴 속에 뭉쳐있던 것이 모두 녹아버리는 것 같아... 상쾌하다. 나의 몸을 모조리 태워버려 주오... 가루도, 재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난 나의 생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약간은 싫어하는 편인지도 모른다. 왠지 꺼림직한 마음을 안고 떠오르는 태양을 맞았고 그리고 또 그것을 머리 위에 이고 다녔고 이제는 75년 3월 15일의 태양과는 영원한 아듀를 고하고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웃음으로 가장하고 명랑한 것처럼 위선의 생활로 열두 시간을 살아왔고 그저 할 일은 없고 무엇인가는 해야겠고 조금 전에 짜임새 있던 계획은 권태가 휘몰아가고 남은 것은 볼펜알을 굴릴 수 있을 정도의 energy만을 소유했다. 그것도 낭비해 버리기는 아까운 조금은 산뜻한 생각이 있어 이제 너를 찾고 있는 것뿐이야. 도봉산 깊숙한 곳에 겨우 물이 녹아 얼음 밑으로 흘러내리는 참신한 여운과 무섭도록 차가운 그 물에 손을 씻고 마음을 씻고 잡다한 사념들을 씻어 버리고는 목이 찢어지라고 외쳐 불러보고 싶어.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는 게. 바람의 위세에 눌렸는지. 아니면 노랗게 말라버린 갈대의 시선에 위축되었는지 나도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가 되고 말았다. 왠지 답답했다. Stage 위의 정희의 모습.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정희의 모습... 너무나 초라했다. 너무나 초라했다. 미치도록 애절했다. 타다 남은 돌을 끌어안고. 힘껏 끌어안고. 그리고 그 위에 눈물을 떨구고. 말없이 웃고 말았다.

얘, 오늘이 내 생일이란다. 너도 알고 있었니? 겨우 한 마디 하고는 돌의 대답을 기다렸다. 많이, 열심히 기다렸다. 또 기다렸다. 갈대를 꺾었다. 버들강아지의 순을 심술꾸러기의 장난처럼 따버렸다. 갑자기 까만 돌이 손짓했다. 그리고 정열과 정혜가 생일 선물이라고 커다란 물체들을 가슴에 안겨주었다. 벅찼다. 기뻤다. 귀여웠다. 미안했다. 나는 또 커다란 눈물을 흘리고는 웃었다. 슬픈 일이었다. 가슴 아픈 순간이다. 이렇게 괴로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과연 축하받을 만한 경사냐 말이다. 죽어야만 하는 날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시각에 웃고 말았다. 미쳐버리고 만 것이다. 미쳐야만 했다.

Coffee라도 마시고 녹아져버려야 한다. 라디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자의식이 너무 강하단다. 누구나 생의 불안을 느낀단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라나. 바울도, 그렇게 높은 차원에서 신앙생활 했던 사람이라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했다며 자기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얼마나 깊은 생각을 했나... 자의식의 세계... ‘잠 못 이루는 밤에’를 읽으란다.

아, 새소리가 듣고 싶다. 영겁의 표징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나를 밀어버리고는 코웃음으로 무색케 해 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삶은 왜 이렇게 어리둥절한 것일까? 답답하다. 답답하다. 바람아, 천둥아, 번개야, 나를 삼켜 버려라. 삼켜 버려라. 사랑아, 울어라. 악마여, 웃어라. 정희야, 미쳐라. 미쳐야 한다. 미쳐야만 미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다. 하하하하! 정녕 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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