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생일일기

_ 스물두 번째 생일

truehjh 2012. 12. 16. 17:38

1977.03.15


초침만이 나의 벗이 되어 이 작은 방에 존재하고 있다. 그 규칙적이고 율동적인 음향은 심장 깊은 곳을 노크하며 생동감을 충만케 한다.

9일 친절하시던 연 엄마가, 13일 인정 많으신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 난 모르겠다. 슬픈 이유도, 기쁜 이유도. 결국은 무엇일까. 생명은 태어나면서 스스로 울지만 영원한 곳으로 갈 때는 남은 생명들 즉 타인을 울린다. 곧 모든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져 버리겠지만 가끔 울어야 하는 사람들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와 엄마가 3일간 집을 비우고 계시다. 이 커다란 건물을 혼자 지키며 갖가지 상념들로 괴로워하고 있는 나 자신 또한 비극의 주인공인 것 같다. 과연 나에게 주어진 삶은 어떠한 형태일까. 아무도 가지 않은 것 같은 R. 프로스트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러나 역시 낙엽이 쌓이면 내 발자욱도 지워지리라.

내가 분명코 울고 태어났을 만 22년 전 오늘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엄마 곁에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겠지. 난, 목욕을 했을 것이고, 자고, 먹고, 울고... 그러나 지금 나 혼자 나의 힘으로 식사를 준비해 놓고 장례식에 갔다 오실 아버지, 엄마, 정열, 학교 간 정혜를 기다리며 잠시 여유 있는 척 해 보는 것이다.

사람은 과연 슬픈 존재일 수밖에 없을까. 울며 태어나서 울리고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 이 순간까지 미친 아이처럼 눈물 없는 가혹한 울음을 울어야 하는 것일까. 매일, 매순간, 울부짖으며 생명이 연장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왜 만족하며 미소 지을 수 없는 것일까.

生日.

나의 태어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죽기 전에 완성할 수 있는 의미일까. 인간의 삶은 아무것으로도 정의 할 수 없는 것 같다. 말로 표현하고, 글로 감정으로 나타낼 수 없는 어떤 미묘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큰 강물 줄기의 한 H2O분자가 되어 역사적 인간류에 속하는 것으로 모든 책임은 완성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또 남에게 덕을 끼치며, 사랑을 나누어 주며, 인류에 공헌하는 사건을 만들어 냄으로, 아니, 한 여성으로, 어머니로, 딸로, 애인으로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책임은 끝났다고, 우리의 일생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 머리 속에 가득 찬 모든 것들을 겨우 요러한 문장으로 밖에 기술할 수 없음이 한스럽다. 과연, 지금까지의 모든 말들은 변명에 불과하다. 나에겐 이것과는 거리가 먼, 정말 거리가 먼 것들로 과포화 되어 있는데...

역시 슬픈 존재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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