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있는가
심장을 뛰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간절함이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내 삶을 이끌며, 무기력함을 일깨워 주던 간절함이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미래에 대한 간절함으로 젊음을 불태우곤 했던 그 옛날 어느 시점에서의 나는 늘 갈급했다. 내 앞에 놓여있는 나의 운명을 깨닫고 싶어 불철주야 전전긍긍했다. 신탁을 기다리는 간절함이라고나 할까. 견뎌내기 어려운 시간에도 성경이나 희랍신화, 각종 위인전과 자서전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의 시련 극복기를 떠올리며 당연히(?) 찾아올 미래의 성공을 꿈꾸는 간절함이었고, 되어야 할 나와 되고 싶은 나의 일치를 고대하던 간절함이었다.
내 삶을 결정지을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피조물로서의 나를 용납할 존재론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 순간에 바로 생명력과 창조력을 부여받았고, 이미 창조적으로 살도록 계획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간절하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질문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했다. 그냥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알지도 못하는 그 뜻에 기대고 살았다. 내가 원하는 삶을 그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면서, 늘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애타게 찾았다.
60년 가까이 살고 난 후에 뒤돌아보니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간절함을 앞에 세워놓고 내 생각대로 산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이나 내 안의 소망이 별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오히려 나에게 주신 소망을 더 강하게 붙잡았어야 했다. 내 안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이제 와서 후회스럽다. 그 간절함의 에너지를 가지고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선한 뜻에 감사하며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하나님이 나를 나로 만드신 그 사실에 감사하며 나의 소망과 믿음대로 살았으면 될 뻔했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바꾸어서 말하면 내 삶을 꾸려나가려는 주체적인 능력이 없었고, 노력도 부족했다.
이제 다시 나 자신의 요구에 집중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또 주어질까. 아무것도 진행됨이 없이 그냥 정지해 있는 듯한 지금의 내 시간이 바로 그러한 기회의 시간일까. 현재의 상황들, 조건들, 그리고 내 마음까지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또한 소망이라 믿으며 주체적으로 행복하고 아름답게 시간들을 활용해 나갈 수 있을까. 소멸되기 바로 직전의 정적이 흐르는 지금을 생성의 시간인 내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하나님 앞에 가는 그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삶의 희열, 보람, 가치, 의미 뭐 그런 형식을 갖춘 간절함을 찾아내기도, 만들어내기도 어려운 나이를 맞고 있다. 이 나이에 맞는 간절함이 있다면 무엇일까. 무엇에 대한 간절함이 있을까. 생활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 외에 더 무엇이 있을까. 편한 죽음에 대한 간절함 외에는 없다고 나를 세뇌해도 포기는커녕 점점 더 간절해지는 그 어떤 것이 내 안 어딘가에 남아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어디에 남아있을까. 나를 충족시키고 지금의 삶을 의미 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간절함, 내 안에 숨어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한 간절함을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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