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 존재감은 가졌는가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모임에 나가면 그 공간 안에서의 내 위치는 ‘연장자’다. 연장자라는 단어에서 노인차별이 연상된다면 너무 과하게 예민한 것일까. 하여간에 뭔가를 배우고 싶어 평생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다거나, 듣고 싶은 인문학 강의를 찾아간다고 치자. 거의 많은 경우 나는 수강생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거나 혹은 두세 번째로 나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다. 나의 의견은 연장자로서의 의견일 뿐 현장감과 트렌드의 흐름에 뒤처지는 듯하여 자신 있게 주장해 나갈 수가 없다. 참고할 정도는 될 것이라고 치부해 보지만 어깨가 무겁고 괜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주체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참관자의 입장에 놓일 경우가 더 많다. 이럴 때면 내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 풀이 죽곤 한다.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나 고상한 품위가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내가 아우라를 내뿜으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살고 싶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드러내 놓고 내 존재를 내세우며 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독특한 존재감을 품고 산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존중받을 만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튼 존재감이 무시된다고 느껴진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이제는 그 착각조차 낯설고 어색하다. 착각을 벗어나게 된 건지, 실제로 존재감이 상실된 건지 잘 모르겠다.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니면 둘 다일 가능성도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 속에서 내 존재감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가고 있는가. 난 지나가고 말 것들을 붙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가.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일단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 이전보다 확 줄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직업이라는 영역은 젊었을 때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은퇴하는 시기를 거치면 거의 완전 축소되는 영역이다. 거기다가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시댁이라는 거대한 영역이 생기지 않았다. 물론 남편과 아이라는 영역도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계의 영역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친구 간의 사이에서나 형제와의 사이에서도 나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다. 다 같이 늙어가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는 여력이 약해져 있어서다. 멀지 않은 시간에 나를 필요로 하는 무대가 사라지고 말 것은 명명백백하다.
그러나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하는 무대에 서서 존재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다. 자존감으로 충만해 있을 때는 타인에게 존재감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매 순간 내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 진다. 이것이 큰 변화다. 이 모순점의 경계에 서 있다는 인식으로 난처한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주변 환경이나 상황은 크게 변한 것이 없는데 내가 변한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는 사실, 영향력을 발휘하던 영역에서 물러나야 하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앞으로 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될 것이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보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변화에 나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필요한 영역 속으로 내 존재감을 옮겨놓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과거의 업적 같은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현재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면 저절로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 가치 있는 삶이란 ‘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 삶’이란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는 삶!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지 못한 나는 오늘도 숨죽인 목소리로 허무와 무의미를 중얼거리고 있다.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깃털보다 더 가볍게 느껴지는 내 존재감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삶은 유유히 흐르고,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도 수면 위에는 작은 떨림 한 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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