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엄마와의시간여행

보성여학교 퇴학사건

truehjh 2014. 3. 8. 18:20

 

엄마의 보성여학교 퇴학사건은 우리 형제자매들의 자랑꺼리다.

엄마는 가끔 여학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하곤 하신다. 기숙사 여학생들끼리 교복을 예쁘게 다려 입고 자랑하던 시절이 그리우신가 보다. 하지만 이야기는 늘 여기서 멈춘다.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물어볼 때마다 엄마는 부끄러워하시며 이야기하기를 꺼려하신다. 우리는 더 귀찮게 하며 이야기를 재촉하는 의미로 엉뚱한 질문을 하면 그제서야 이야기를 풀어내곤 하신다. 

 

엄마가 이북 보성여학교 2학년 시절... 김일성투표를 반대하면서 열혈 여학생 5~6명이 서북교회에서 철야구국기도회 모임을 가지곤 했단다. 주체성이 강하고 자주적인 여성이었던 엄마는 공산당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보고하는 형식의 편지를 보냈는데, 집에다 보낸 그 편지가 다시 교장실로 배달되었단다. 요사이로 치면 배달사고가 났다고나 할까. 그 당시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소학교 동창남자가 엄마의 편지를 열어보았다는 것이다.

 

남자도 가지 못하는 상급학교에 등급한 여학생의 편지가 하도 궁금해서 뜯어본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엄마에게 닦친 피해가 너무 컸다. 엄마의 아버지와 삼촌이 교장실에 불려갔고... 교장은 조용히 사건을 처리하자며... 집에 가서 공부하며 좀 쉬라고 하고서는... 연락이 없었단다. 얼마 후에 알아보니 퇴학처분이 되었단다. 이 기록은 보성여중고 역사에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더 이상 공부할 수가 없었단다. 아니 공산당이 싫어서 공부하기도 싫으셨단다. 결국은 공산당이 대지주들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1차로 쫒겨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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