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생일일기(1970~ )

_ 예순 번째 생일

truehjh 2015. 3. 16. 00:01

 

2015.03.15  

 

오늘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첫 생일 회갑을 맞았다. 엄마가 날 낳아주신 그 날부터 59번째의 생일까지 늘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셨다.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를 막론하고 엄마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축복이었다.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라던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던 내방은 책을 중심으로 하여 책상과 책꽂이로 꾸며져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많은 것은 아니다. 젊은 날 나를 지켜준 친구였고 삶의 틀이었던 몇 사람들의 사상이 기록된 책들과 선물로 받은 책들이다. 나는 50대까지도 이 틀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 내 주변 공간을 일상의 편한 삶의 형태로 정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40대에 살았던 삶의 틀을 60대에도 그대로 갖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60대는 삶의 내용이 많이 변화될 수밖에 없는 나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생활이 아니고, 지금까지 익혀온 삶을 나누고 비우는 생활이어야 한다. 그래서 작년 생일에는 버리는 연습과 버리는 훈련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다란 책상을 치우고, 작은 책꽂이들을 비우고, 공부하던 많은 자료들을 버리고, 공간을 정리하고 있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엄마까지 내 곁에서 데리고 가심으로 포기해야 하는 훈련의 극치를 맛보게 하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간 활용이 이동되었다. 엄마가 쓰시던 침대와 옷장들을 치우고 내가 자는 방으로 바꿨고 내 방은 공부방이 되었다. 이제 겨우 책과 생활 공간을 분리시켰지만 난 아직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들을 만들어 가지는 못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독립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데, 그렇게 다시 그리는 나의 자화상이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회갑은 마무리한다는 의미보다는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앞으로의 삶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익숙한 것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 감사하다. 60년을 살면서 어느 정도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었으니 다시 시작해도 헛발을 내디딜 확률은 적을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끝을 아는 즐거움으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 될 것 같다. 이러한 시작이 진실로 감사한 마음으로의 시작이고, 소박한 꿈으로의 시작이고, 나의 한계 안에서의 겸손한 시작이니 불안하지도 않다. 기회가 되면, 기회가 다가오면, 두려워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서면 된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삶의 작은 이벤트일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젠 정말 단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도 내방에서는 프리지어 꽃향기가 난다. 회갑선물로 받은 꽃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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