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일본(2015)

[두 번째 일본여행(2015)] 신주쿠방콕(?)의 하루

truehjh 2015. 5. 15. 23:06

20150508 신주쿠방콕(?)의 하루

 

밤새 잠을 뒤척였다. 해열진통제 덕분에 열은 심하지 않은데, 함께 복용하고 있는 항생제는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목이 점점 더 부어올랐고, 턱 아래 임파선에 생긴 몽우리가 갑자기 커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항생제 복용시간을 맞춰보려고 새벽 4시에 다시 약을 먹었다.

  

창밖은 훤했다. 호텔 주변이 유흥지라고는 하는데... 불 밝힌 거리와 빌딩들 덕분에 밤이라는 느낌이 거의 없다. 한두시간 뒤척이다가 잠시 잠들었었나 보다. 온 몸이 땀에 젖어 깨어보니 아직 7시 전... 시간이 참 더디 가는 것 같았다.

 

호텔 주변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간 식구들이 들어오면서 상가에 들러, 내가 넘길 수 있는 부드러운 음식들을 몇 가지 사가지고 왔다. 푸딩, 카스테라, 두유, 주스... 부드러운 푸딩을 넘긴 후에 그 그릇에 두유를 넣고 카스테라를 말아서 겨우 삼켰다. 음식을 삼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미음도 못 드시던 때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한 수저라도 더 드시게 하려고 애쓰던 우리들... 엄마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오늘의 스케줄은 빡빡하다. 오전에 하라주쿠에 들렷다가 지하철로 아사쿠사까지 가서 수상버스 티켓을 미리 사 놓고, 니카미세도리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센쇼지에 들려 구경하고, 점심을 먹고, 수상버스를 타고 오다바이로 와서 건담, 자유의 여신상, 레인보우 브릿지를 보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요섭이를 만나 해상공원 저녁노을 보며 저녁을 먹고, 자동차로 다니면서 도쿄타워를 보고 분위기를 즐기자는 면밀한 계획이었다.

 

사실 오늘의 일정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계획이었는데... 수포로 돌리자니 어처구니가 없다. 옆에서 걱정하는 도토리와 올케에게 미안해서 힘을 내보려고 했으나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섭취하지 못한 상태로 걸어 다닌다는 것이 대단한 부담감이 되었고, 동행하는 식구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또 부담스럽고 미안해졌다. 택시비도 알아보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방에 있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고는 혼자 남기로 결정했다. 한 낮에 이국땅 호텔방에 혼자 있어 보는 것도 특별한 느낌일 것 같다는 사치함도 약간은 작용했다. 뭐 이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황당하긴 했지만 이때까지는 그래도 여유만만이었다. 동행인들을 걱정할 여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둘 다 떠나보내고는 침대 모서리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커다란 공룡이 있는 옥상 위에 한 남자가 서성거리다가 구석의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고 있다. 높은 건물들 위로는 까마귀들이 날아다닌다. 특이하다. 어디에 먹을 것이 있는지... 

 

기운을 좀 찾아보려고 믹스커피를 탔다. 미지근하게 식혀놓고 한모금씩 고개를 옆으로 하고 넘긴다. 이 멍한 느낌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심심해져서 호텔 내부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호텔은 일본집의 느낌이 난다. 오목조목한 가구의 배치와 침대 씨트의 백색과 침대 밑부분을 감싼 검정색의 천이 묘하게 대비되면서 일본의 맛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가 이번 여행의 백미인데 아쉽게도 방콕이라니... 사진도 찍으며 혼자 놀다가...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하려고 침대에 누웠다. 가끔 카톡카톡하는 소리에 놀라 확인하는 거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침대위에 누워 있으니 별별소리가 다 들린다. 이상하다 못해 괴기한 기계음들... 궁금하다기 보다는 약간 미스테리어스^^... 그 순간에 오피스에서 전화가 온다. 디스터브하지 말라는 표를 문고리에 걸어 놨건만... ㅠ...ㅠ... ~낫니드투메이컵룸!

 

다시 약 먹을 시간이 되었다. 빈 속에 약을 복용하고는 잠시 잠이 들었다. 그래도 도무지 못 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 것도 순간... 메슥거리다 못해 어지럽고 구토가 나서 화장실로 기어갔다. 목은 아프고, 턱 밑은 두툼하게 올라와 있고, 입 안의 점막들이 부어오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갑자기 숨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응급실행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여기는 일본이고... 바로 응급실로 들어가야할 것만 같은 걱정과 함께 따라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두려움!!!

 

이런 와중에 머리 속을 꽉 채우는 또 다른 공포!!!... 내 신변정리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다는 현실... 남기는 말이라도 어딘가에 써 놓을 껄... 껄... 아니 모든 비밀번호와 아이디들을 누구에겐가는 알려줬어야 했는데... 이런 제기랄... 그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건가... 인생 잘 못 살았다는 자괴감... 너무 속이 상해 하나님을 불렀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갑자기 이 순간 내가 이 방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은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감동’이란 단어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해야 편안함의 소중함과 감사를 진지하게 느끼게 되나 보다. 어려움이 없으면 상대적인 감정인 평안함의 실체를 비교할 수가 없어서인가. 특히 하나님께의 감사가 그렇다. 그냥 막연한 감사, 감동이 없는 감사였다가 괴로움이 닥치니 그간의 건강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간의 평안함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 것인지... 절감하게 된다.

 

너무 이른 나이에 다 포기한 것처럼 살아가는 내 자신의 현주소... 별 희망이 없는, 아니 희망이라는 놈을 찾을 필요가 없는, 소망을 가지는 것이 귀찮아진 나태한 삶이었지... 최근의 삶이... 그렇게 많은 시간마다 주어졌던 감사였는데 요즘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감동이 별로 없었다. 특별히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환경이 변한 것도 아니다. 절절함이 없어졌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이 사라졌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할 기회가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에서 꽤 많은 시간을 여행에 사용했는데 뒤처지지 않고 다니게 하심을... 여행 다닐 수 있게 환경을 설정해 주심을 절절하게 감사했던가... 아무 일 없이 잘 다닐 때에는 이런 감사가 되지 못했던 것 아닐까.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혜에 감동하며, 감격하며 살아가게 해 주세요...!!! 순간 순간 열정적으로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 나에게 지금 이 순간 허락되어 있는 이 모든 사소한 기쁨들을 감격으로 느끼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그것이 에너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 비몽사몽간이지만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내일을 위해서, 내일 비행기 타는 과정을 잘 통과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오늘을 저축하는 시간으로 삼으면서 카톡으로 동생들과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조카에게는 약을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상황은 목부분과 점막부분에 생긴 염증이 원인일 테니까... 현지 사람들이 보통 편도가 부었을 때 쉽게 구입해 복용하는 약이면 좀 도움이 되겠지...

 

일본약을 사들고 저녁 9시쯤에 식구들이 돌아왔다. 약의 성분이나 알고 먹고 싶다는 직업의식이 발동해서 설명서를 보았다. 적어도 약성분은 영어로 되어 있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읽을 수 있는 글자가 거의 없다. 한자로 된 소제목, 숫자 정도만 눈에 들어온다. mg이라는 단위 외에는 영어 단어 한 글자도 없었다. 조카가 읽어 주는 일본어 발음으로 겨우 유추해 볼 수 있을 정도다. 일본인들의 일본어 사랑... 그들의 자부심이 평범한 약 설명서에도 드러나 있다.





 

트라넥사믹에시드, 감초, 리보플라빈, 피리독신, 비타민씨로 구성된 약으로 인두염, 편도염, 구내염에 쓰이는 그 약을 먹고, 한 시간 쯤 지나니 부어오르던 목이 상태가 수그러드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tranexamic acid의 작용을 알아보니 강력한 지혈작용이 있다는데 입안의 점막들이 부풀어 오른 상황을 가라앉혀준 것 같기도 하고, 1,000mg의 비타민씨가 수렴작용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에 먹은 것이 없어 속은 여전히 뒤집혀져 있는 상태였지만... 여러 가지 증상들의 원인을 확인하게 되니 참을 수 있었다. 원인 모를 염증이 확산되는 상황이 무서웠었던 것이다. 염증이란 시간과 연관이 깊으니까... 적절한 시간을 놓칠까봐... ㅠ..ㅠ... 어쨌든 일본에서 응급실로 들어갈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조금은 안심하면서 환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