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장년시대(2008~2019)

e시니어진입기 - 61세... 살아간다는 것

truehjh 2016. 2. 3. 17:54

61... 살아간다는 것

 

살아가고 있다는 동사형이 이라는 명사형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더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 방향을 잘 잡고 살아가고 있는가,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젊었을 때에는 인생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본향에 대한 의식보다는 가끔 만나는 골목길 모퉁이가 주는 호기심에 이끌렸다. 아스라이 멀게 보이는 도달점이 너무 막연하여 바로 앞의 목표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온 길을 반추하며 근본적인 목표 지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싶다.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지금을,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나는 인생의 길 위를 걷고 있는 순례자다. 그러므로 목표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순례자가 길 위에서 멈추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저 매사에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까지 거쳐 온 수많은 골목들, 잠시 잠시 머물던 뜨락들은 먼 길을 가는 과정에서 만난 풍경이고, 지금 머물러 있는 이 순간 역시 또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한 휴식일 뿐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본향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이고 또 앞으로의 시간들이어야 한다. 내 삶의 목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하늘나라다. 그곳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곤 해도 매 순간의 삶이 늘 고달프긴 하다.

 

지난 21, 엄마의 1주기 추모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본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1년 전에 품었던 마음의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답답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가끔 자학 아니 더 나아가서 가학적이라고 할 만한 언어를 선택해서 나를 설명할 때가 있다. 상대방에게 나를 빠르게 이해시키려 하거나 알게 해주려고 할 때 사용하는 언어습관이다. 좋다와 나쁘다의 차원이 아닌, 나의 행동양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감 없이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지금의 나이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왜 아직 이런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왜 아직도 계속 수동적인 스타일을 유지시키고 있는지,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안주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이러고 사는지, 사람이나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얽힌 모든 일들이 이야깃거리로 지나가 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앞뒤가 연결되고, 원인과 결과를 추리할 수 있고, 과정의 합리성을 엿볼 수 있는 일상의 삶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모든 삶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고 여겨야 하는 시간들이 아쉽고, 무의미하게 지나가 버릴 일회성 삶들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분명히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애매한 순간을 탈출해 버리려는 심리적 회피의 과정도 자주 발현한다. 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이 나이에 과연 마땅한 과정인지 잘 모르겠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더 많은 것들을 갈구하고 기도하며 염원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만나지는 것들로 만족하자는 방식을 선택한 이후의 삶이 훨씬 더 편해졌기 때문에 이 길을 고수하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나태한 삶 혹은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자책감 같은 것들로 괴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감사한 일로 가득하다. 또한 앞을 내다보아도 두렵지 않다. 미지의 세계지만 순례자에게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주어진 이 순간을 기뻐하며 지금 이 순간에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보내며 살아가자. 모든 만남들을 소중히 여기자. 섭섭함과 원망을 버리고 여유를 갖자. 준 사랑보다 받은 사랑이 더 크다고 느끼며 빚진 자의 마음이 되자. 매사에 진실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려고 애쓰며 살면 된다. 정지해 있는 삶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과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