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이탈리아(2017)

[2017 휠체어합창단 로마공연&여행] 로마시내(3) - 진실의 입과 성마조레성당의 야경

truehjh 2017. 2. 5. 15:09

2017.01.13. 금(3).

 

전수동 휠체어를 타고 빗줄기 거센 로마의 시내를 달린다는 것...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인데 실제로 그랬다. 내 인생에서 유일무이한 하루가 아닐까. 나는 이런 해방감과 속도감으로 인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수분을 품은 촉촉한 공기 속에서 역사의 발자취를 드러내고 있는 옛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그 현장이 오히려 따스한 햇살 가득한 날의 로마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고, 역사의 시간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진실의 입을 확인하러 빗속을 뚫고 달려가 산타마리아인코스메딘성당의 아래층 한쪽 벽면에 있는 진실의 입 입구에 모였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연상시키는 한 장면을 연출하려는 듯 손을 넣고 기념사진을 찍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나는 옆으로 들어가 사진만 찍고 나와서 비에 젖은 로마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를 맞고 서있는 것은 불편하지만 이 또한 멋지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라...

 

 

 

버스가 도착해서 올라탔다. 조금 전에 휠체어로 달리던 거리를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 나왔다.

 

 

한 번에 25만 명 이상도 수용이 가능했다는 로마제국 최대의 대전차경기장을 지나면서 팔라치노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로마 시내는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그 언덕은 황제들의 궁전과 귀족들의 거주지가 자리 잡은 곳,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전차경기장과 포로로마노가 내려다보인다는데 우리는 버스 속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다. 벤허는 10미터 아래서 말을 달리고, 황제는 그 위에서 권력을 자랑하며 내려다보았을 텐데... 붉은 담벼락 아래의 넓은 경기장이 지금은 테베레강의 범람으로 모래에 파묻혀 있어 공원으로 사용되는 평범한 운동장같이 보일 뿐이다.

 

 

점심식사가 예약된 비원이라는 식당을 향했다. 식당 앞에 도착하여 내리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황당한 소식이 전해졌다. 식당은 층계가 있고 입구가 좁으며, 화장실 가는 길에도 계단이 있단다. 화장실이 급한, 따끈한 국물이 고픈, 훈훈한 실내공기가 그리운, 물론 배도 고픈 우리들인데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많은 휠체어가 들어오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한 식당 주인의 어색한 낯빛에서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웃음을 되찾으며 모두 인내하는 듯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계획되었던 오후의 일정은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오려는데... 버스가 또 문제를 일으켰다. 엄밀히 말하면 리프트가 고장 난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몇 친구들은 20~30분 거리에 있다는 호텔로 직접 가기로 했단다. 남은 우리들은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버스 속에서 추위에 떨다가 겨우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쉴 사람은 저녁식사 주문을 받겠다는 공지가 떴다. 나는 방에서 편하게 먹고 싶었는데, 불어 터진 파스타를 먹을 수 없다는 평화의 입맛 덕분에 이탈리안레스토랑에 직접 가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게 되었다. 이탈리아 음식의 본고장이라 기대를 했더니 강한 치즈 냄새와 짠맛 때문에 맛있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일종의 보너스라고나 할까. 식사하고 나오다가 귀종언니를 만났는데 산타마리아마조레성당의 야경을 보러 가자고 한다. 무조건 OK! 언니부부의 뒤를 따라 겁없이 달려갔다. 호텔로 들고 날 때 마주치곤 하는 성당의 모습이 궁금해서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과연 성당의 야경은 은은하고 그 위엄은 대단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는 풍경은 생소했지만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조명이 아름다웠다. 산타마리아마조레성당은 성모마리아를 위한 성당 중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로마를 대표하는 4대 성당 중의 하나란다.

 

 

하루 종일 2천 년 전에 박아놓은 돌들 위를 달렸다. 말로만 듣던 로마의 돌길을 휠체어로 달리다 보니 허리에 부담이 온다.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휠체어에서 일어나곤 했다. 발걸음 몇 번 떼기 시작하기가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하다며 최면을 걸고 다녔다.

 

진통제 두 알을 삼킨 후, 피곤하고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고 눈을 감으니 꿈결같은 장면 장면들이 지나간다. 이 신기한 기분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정말 멋진 로마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