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러시아(2017)

[2017 휠체어합창단 모스크바공연&여행] 드디어...

truehjh 2017. 8. 10. 20:30


동생의 전자책 <크리스천 CEO의 아침묵상> 제작을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모스크바 여행에 대해 기억을 되살려 보자니 까마득한 추억의 시간같이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가보고 싶었던 나라 러시아,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과 틈틈이 적어놓았던 메모를 지도삼아 되새겨 보아야겠다. 되도록이면 내가 찍은 사진을 올리려고 노력하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찍어서 공개해준 사진들이 모여 있어서 누구의 작품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조금은 염려가 된다. 다른 사람이 찍어 준 사진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올려야지^^...

 

2017.07.15.

 

어제저녁 늦게까지 뭔가 미진한 것 같아 서성거린 것이 이유인지 몹시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떠나기 전부터 진땀이 난다. 사실 어젯밤 최후의 순간까지 옷을 결정하지 못해 헤맸다. 모스크바의 기온이 여기보다 훨씬 낮다는 정보가 있지만, 그래도 여름이라는 생각에 짧은 팔을 기준으로 옷을 골라 짐가방에 넣었었다. 잠을 청하려고 누워 있다가 비 오고 바람 불면 추울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여러 번 일어나 긴팔 셔츠로 바꿔 넣느라고 잠을 설쳤다. 짐 무게와 부피를 줄이려니 몸과 머리가 피곤해진다. 뭘 다시 넣고 뭘 다시 빼야 하는지... 결론은... ~ 몰랑~ 복불복이다!

 

135분 이륙 예정인데 30대 가까운 휠체어를 관리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때문인지 830분까지 공항에 집결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그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늘은 떠나는 날이니 공연과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는 시간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찍부터 도토리를 깨워서 가방을 들어달라고 부탁하고 6시 45분에 집에서 나왔다. 밤새 비가 온 후라서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습하고 무더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신이 나서 이것저것을 챙기며 불평 없이 도와주는 조카녀석 덕분에 맘 편하게 출발했다.


 

8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단원들도 시간에 늦지 않게 거의 모두 집합했다몇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예견이나 한 듯 해님은 떡을 준비해 왔다. 따끈따끈한 떡 한 덩어리씩 받아 아침을 대신해 맛있게 먹으면서 여유롭게 짐을 부쳤다. 이번에도 나는 해님이 빌려준 전수동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동선의 길이에 대한 걱정도 없고, 시간도 널널하게 남았지만 공항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어 일찍 게이트 앞으로 갔다. 쇼핑을 즐기지 못하는 나의 성격 때문에 정말 할 일이 없었다.


딱 붙어 다닐 친구가 없으니 이럴 땐 너무 심심하다. 공사가 다망한 룸메이트 해님에게 나만 돌아보라고 투정(?) 부릴 수도 없다. 예전 같으면 이런저런 사람들과 사귀려고 애를 썼겠지만 이제는 그런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 늙었나 보다. 아니면 에너지가 딸리나...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 탑승수속을 마치고, 휠체어들은 화물로 보낸 후 승무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기내로 진입하는 거사는 잘 치렀는데... 135분에 이륙한다던 비행기는 두 시간이 지나도 꿈쩍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 하늘이 문제가 생겼다나 뭐라나... 트래픽에 걸렸다고도 하고... 하여간에 약속시간보다 6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이륙할 수 있었다. 중국 관제탑에서 하늘을 열어주는 허락을 아주 늦게 해주는 바람에 그날 중국 상공을 날아야 하는 비행기들은 거의 모두 이런 곤란한 상황을 당했나 보다. 뉴스에도 나왔단다. 나도 30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참참참...


이륙을 기다리는 동안 기내 가방 안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는 상태였고 나는 배가 무지 고팠다. 사탕이라도 나누어 먹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육지에서 기내식을 먹게 되었다. 이것도 기억에 남을 추억 중 하나다. 메뉴는 소고기미트볼과 낙지비빔밥이었다. 예전 같으면 당연하게 소고기미트볼이었겠지만 그 순간엔 빈속이었기 때문인지 미역국을 준다는 말에 홀려 과감하게 매콤한 낙지비빔밥을 선택했다.

 

누구는 뱅기감옥이라고 불평을 하는가 하면, 누구는 뱅기카페라며 이 상황을 즐긴다. 우리의 여행에 관심을 갖는 뒷좌석의 승객에게 틈틈이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 자랑도 하고, 여행 중에 시간이 있으면 대사관에서 하는 공연에 참석하라고 초청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셀카를 찍으며 놀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 보일 때쯤 비행기는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이렇게 날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땅에 내리겠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모스크바공항에 착륙을 준비할 시간에 떠나고 있으니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져서 답답했다. 이제 다시 8시간 40여 분을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한다니 욕창이 생길 수도 있을 단원들이 걱정되었다. 결국은 16시간 정도를 비행기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허리가 아프고, 고관절이 빠질 것 같고, 다리는 퉁퉁 부었다.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동안 날이 어두워지지 않는 백야였고 하늘 위에서 보는 노을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이륙이 늦은 덕분에 이러한 관경을 목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오후 1시에 떠나면 6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모스크바공항에 오후 5시 정도에 도착한다 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는 나 혼자만의 계산법은 무효가 되었다.


  

현지시간 오후 11시에 모스크바 세레메체보공항에 도착했는데 밖은 캄캄했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공항의 주변은 볼 수 없었고, 우리를 반기는 것은 유리창을 흘러내리는 거센 빗줄기였다. 다른 승객이 먼저 다 내린 후에 우리는 휠체어가 준비되는 순서에 따라 기내를 빠져나갔다.


공항 내부는 그렇게 넓지 않은 것 같았지만 생소하고 낯선 분위기로 인해 늦은 시간에 우왕좌왕했다. 공항의 직원들 역시 무표정한 것 같아 삭막했지만 실제로는 친절함이 느껴졌다. 짐을 다 찾아가지고 공항 밖으로 나오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일행의 짐 중의 하나가 분실되었다는 것이다. 그 가방 속에는 전동휠체어의 보조 배터리와 충전기가 들어 있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치지 않은 짐을 찾느라고 모스크바공항에서 혼비백산하고... 연락은 받은 지인이 인천공항에 가서 그 가방을 안전하게 찾아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