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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다 (요 10 : 11)

truehjh 2017. 11. 27. 11:45


"야소는 양들을 좋아해"

 

오래전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2~3년간 직장생활을 한 후 시장 통에서 자그만 약국을 개업했었다. 2층 건물의 아래층에는 가게가 둘 있었고, 모퉁이에 있는 공간은 약국이었고 그 옆으로 쌀집이 있었다. 우리 건물의 주인부부는 연로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자녀들과 함께 2층에서 살았다. 주인아저씨의 아버지 그러니까 연세 많으신 그 할아버지께서는 적적하실 때면 아래층에 있는 약국을 방문하신다. 그리고는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리는 긴 의자 한 켠에 자리잡고 앉으셔서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과 바깥 풍경을 내다보곤 하셨다.

 

그 때만해도 약국을 개업하고 있는 약사들에게는 휴일이 별로 없었다. 설명절이나 추석명절에 하루나 이틀씩 쉬는 것이 고작이었다. 출퇴근시간의 개념도 없었다. 날마다 새벽 6시가 되면 문을 열고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약을 팔아야 하는 시절이었고, 밤 12시가 다 되어 술 먹고 늦은 귀가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약을 건네야 하는 상황이어서 통금시간이 지나야 문을 닫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주일이 되면 약국문을 열지 않았다. 평소에는 약을 잘 복용하지 않던 사람들도 약국문을 닫는 주일날만 되면 갑자기 어딘가 아프게 되는 모양인지...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면 약국에 오는 사람들마다 불평을 하곤 한다. 어제 아파서 약이 꼭 필요했단다. 아파도 꾹 참고 있다가 이 약국이 문을 열기만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래서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찾아 왔다고 한참을 설명을 하다가 억울하다는 듯이 아니면 알아달라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아픈 상황을 설명하면서 약을 사가곤 했다.

 

어떨 때는 별 증상도 없는데... 박카스 한 병, 사리돈 한 알을 사면서도 장황하게 그 설명을 다 하고 돌아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20대 중반의 어린 나로서는 이해하기 무척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을 다 들어주느라고 참 애를 많이 쓰곤 했다. 그래도 나의 약국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을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고마워해야 하는 데... 그렇게 까지 마음이 열리지 않아 참 괴로워하던 시절이었다. 주인아저씨의 아버님 그러니까 80이 넘으신 그 할아버지, 지금은 80 넘으신 어르신이 뭐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자 평균수명이 별로 길지 않던 시절이라 굉장히 나이가 많다고 느껴지던 그 할아버지가 월요일 아침이면 내려오셔서 의자에 앉으며 하시는 말씀은 늘 같았다. ‘어제 손님들이 너무 많이 왔더랬어... 모두 약을 못사고 그냥 돌아갔다고... 어떤 사람들은 셨터를 두둘겨대서 씨끄러웠어.. ’ 등등으로 문닫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곤 하셨다. 여름에는 냉장고 속의 시원한 드링크들 중에 원비도 드리고 구론산도 드리고 박카스도 번갈아 드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쌍화탕이나 사물탕도 드리곤 했다. 그분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서 드시곤 했다. 아마도 마음속에는 자신의 손녀가 혼자 하는 약국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시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월요일 아침 늘 앉아서 쉬시는 그 의자에 앉으셔서 약국의 양쪽 출입문 사이의 벽에 걸려있는 액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다가 하시는 말씀이 야소는 양들을 좋아해...”였다. 내가 약국을 개업했을 때 누군가가 개업선물로 준 성화가 들어있는 액자를 벽의 빈 공간에 걸어 놓았었다. 내 마음에도 들고 평안함을 주는 그림이라서 나도 늘 쳐다보며 안정을 취하곤 하던 그림인데... 그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렇게 평가하셨다. 아마도 내가 기독교인이고, 그래서 주일에 장사를 하지 않고 약국문을 닫고 교회에 가서 그 건물 속에 없다는 사실이 뭔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나지만... 어떻게 설명을 해드려야 그분의 마음에 들지를 몰라서 그냥 웃으며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요한복음 10장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체구가 작으면서 까만 피부에 예리한 눈을 가지고 계시던 그 분. 얼굴에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지만 인생의 어른으로서 뭔가를 해 주고 싶으셨던 그 마음을 이제는 나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20대 중반의 어린 내가 억센 시장통의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혼자서 약국을 운영해 나가는 나의 입장을 이해하며 돌보아주고 싶으셨던 그분의 마음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좀 어른이었더라면... 그분이 야소라고 표현하는 예수님 이야기도 해드리고, 기도하는 것도 알려드리고, 찬양하는 것도 좀 소개해 드렸을 텐데... 주일날 약국문 닫고 교회 간다고 아쉬워하시던 그분의 마음을 이해해 드리지 못한 것, 같이 교회가자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죄송해지는 오늘 아침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 요한복음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