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같이/Editing-Writing

[노트] 왜 글쓰기인가?

truehjh 2007. 3. 16. 17:51

왜 글쓰기인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나니 꽃샘추위가 유난하다.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다가 햇볕이 들고, 구름이 몰려오며 비 내리고, 그리고 다시 바람...

 

나 또한 얼마간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뭔가 불안한 상태가 계속된다. 규칙적이고 목적성이 있어야만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심과 함께 또 다른 불안이 고개를 내밀고 싹을 틔우려 한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부딪히는 대로... 그냥 성실히 살면 되는 것. 한 가지로 수렴해 보려고 애태우지 말자. 그 하나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나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의 삶 전체를 통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하지만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누구에게라도 설명할 수 있는가? 설명하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과연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설명할 수 없다면 너무 게으르거나 생각이 부족하다거나 아니면 성실하지 못한 자세로 살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너무 심한 학대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 본다. 내가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가가 아니라, 내 삶의 여러 분야 중에서 뛰어난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20여 년은 배우는 것에 몰두하는 기간이라고 본다면 그 후의 삶 중에서 20년 이상 지속하는 일로 인해 자신을 평가하며 자신의 삶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한 일이어서 나도 그런 삶의 발자취가 있는지를 뒤돌아보게 된다.

 

반평생 이상의 세월을 지나며 여러 가지 일들을 접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깊이 빠지거나 몰두한 사건들이 없어서 과연 내가 어떤 방면에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못하였다. 그냥 해야 할 일들 또는 잠시 하고 싶었던 일, 무엇엔가 이끌리어 그냥 따라 했던 일들은 많이 있지만 진정으로 내가 집중한다던지 오랜 시간을 지속해 온 작업이 무엇인지 발견해 낼 수 없었던 것 같다. 교회봉사, 신학, 약사, 일기쓰기, 수필, 바느질, 그림, 출판사, 장애인권운동, 사회복지사 등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의 컨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과연 내가 전문가다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반문해 보았다.

 

그중에 많은 종류의 내용들이 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 같아 보이는데 유독 글쓰기만은 아주 오랫동안 내 손에서 떠난 적이 없는 것 같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기쓰기로부터 시작해서 읽은 책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적어 놓은 노트와 짧은 생각들을 정리해 놓은 여러 편의 수필들이 있고 지금도 무언가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 생겨도 병중에서도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니 그때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까지 생기니 말이다. 결국은 내가 움직이고 있는 이 모든 일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 즉 기록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고 싶은, 하여야 하는, 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어우르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니 글쓰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이제 좀 여유로워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다는 이유로 내 존재감의 가벼움을 자학하지 말자. 지금까지 난 존재의 흔적을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나를 소멸하는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그렇다고 무엇인가 해결책을 발견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제 좀 돌파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들뜨고 훨씬 인생이 가볍고 환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처럼 나약한 존재다. 언제 다시 마음의 감기가 걸릴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선 건강한 상태다. 이것이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