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한지붕아래서

설연휴

truehjh 2021. 2. 15. 21:07

 

명절 때가 되면 혼자 맞이해야 하는 시간이 버겁게 느껴져서 마음이 스산해진다. 늙어서 그런 것 같다.

 

연휴 첫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지냈다. 5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는 방역 조치에 따르겠다는 핑계로 오빠집에도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방역지침에 따라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핑계였고, 그 이면에는 행동이 자유롭지 않은 비혼 독거노인의 뒤틀린 심사가 숨어있었다. 아무에게라도 배려를 받고 싶은 심정이 있었다.

 

드러나는 이유만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오빠에게 투정 한번 부려보았는데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가장 저항이 적을 것 같은 그럴듯한 핑계 하나를 앞세웠더니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행동을 결정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한가지 행동을 한가지 이유로만 설명하기엔 인간의 감정이란 너무 복잡미묘하다.

 

둘째 날은 동생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밥 먹으러 오라고 초대해 주는 동생댁이 있어서 아직은 살만하다. 고맙다. 가기 전에 도토리 계좌로 세뱃돈을 보냈다. 요즘은 현금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 지갑에 현금이 남아 있지 않다. 동생집에서 명절 음식을 잘 먹고 즐겁게 놀다가 집에 오려고 하는데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혜네랑 함께 오겠단다. 슬펐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셋째 날에는 동생식구들과 함께 오피스텔 하자 점검을 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요섭이네 식구가 파주에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도 고모라고, 큰조카는 부인과 아기를 데리고 고모의 얼굴을 보러 명절인사 왔다고 하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맛있는 밥 한 끼 해주지 못하는 고모라서 미안하고, 나이 들고서도 철없이 행동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실제로 이제는 젊은 조카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다. 각자의 가족 규모가 커지니까 형제들의 가족까지 모이는 건 며느리들한테는 큰 부담일 것 같다. 결혼 못 한 내가 형제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조카들 이후의 세대에게까지 부담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체면을 세우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른답게 행동해야 어른으로 대접해 줄 것 같아서다.

 

'사람&사랑 > 한지붕아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배  (0) 2022.02.04
나도 카네이션을..  (0) 2021.05.09
세례식과 돌잔치  (0) 2020.12.25
추석날 풍경  (0) 2020.10.06
조카 손주의 백일과 장조카의 개업식  (0) 2020.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