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

자가점검(3) - 달라지는 감정

truehjh 2024. 6. 1. 11:32

자가점검(3) - 달라지는 감정

 

근력 감소, 외모의 변화와 결을 같이 하는 노화의 과정에 한몫을 거드는 것은 감정의 변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 말고도, 기본으로 나를 이끌었던 감정이 변화하고 있다. 전에는 슬픔이 주 감정이었다면 지금은 간헐적인 슬픔과 기쁨, 서운함과 고마움의 뒤섞인 감정이 주를 이룬다. 전에는 매사에 호기심 천국이었다면 지금은 만사에 무심해져 가는 낙원이다. 변화되고 있는 감정의 선상에서 나와 애착 관계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애정을 가졌던 사물들도 그렇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희망이나 꿈마저 그렇다. 감정이 이성의 지배하에서 적당히 조절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때다.

 

중요했던 감정들이 시시해지고 있고, 시시했던 감정들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감정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 갈팡질팡한다. 특히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돈독했던 대인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나의 감정변화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유지해오던 그룹 활동도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수많은 추억과 기쁨을 안겨준 모임이었다고 하더라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 전에는 모두가 같은 지향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간극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상황을 잘 풀어내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예전 같으면 힘들어하는 사람이 누구였든 간에 그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공감해 주고 위로해주는 일이 즐겁고 의미 있고 보람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자체가 힘겹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을 지나서 감정적으로 부담되고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고 몸에는 진땀이 나면서 급 피곤해진다. 즐거운 이야기만 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변화를 나이 탓으로 돌려도 되는 것일까.

 

또한, 나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토론이나 논쟁하고 싶은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리를 펴거나 감정적인 대립을 마주하는 것이 겁난다. 이제는 그러한 힘겨루기를 받아내고 지켜볼 힘이 없다.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그냥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우리 형제들이 한 주제를 놓고 날카롭게 토론하고 있으면 엄마가 매우 힘들어하면서 그 자리를 슬쩍 피해가시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 끝까지 지켜볼 에너지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알 수 없는데, 타인의 고통과 우울에 공감하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감수성이 떨어진 것이다.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우스워 보여서, 하찮아 보여서, 무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전혀 이해하고 싶지 않아진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까 본능적으로 내가 경험한 경험치 안에서만 이해심이 발동한다. 나의 경험치가 협소하여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인정하는 영역이 좁아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삶에서 겪고 있는 타인의 아픔들이 나의 일 같아서 정성을 쏟던 시기는 지나갔다. 공동체와 친구들뿐만 아니라, 나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형제자매와 조카들과 조카손들, 그리고 친밀하게 지내는 지인들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또 나와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 이웃들에 대하여도 그렇다. 나는 그냥 하나님께 맡기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들의 아픔은 그들의 삶에서 겪고 지나가야 할 그들의 십자가이므로 스스로 해결하며 배워나가야 하는 문제들이다. 나의 지식과 경험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애착을 버리고 있는 중이다.